[광고속의 에로티시즘]伊 건축자재업체 'SICIS' 광고

  • 입력 2002년 5월 30일 14시 42분


이 여자는 뭘 하려는 걸까?혹시 남성용 소변기에 침을 뱉으려는 건가?
이 여자는 뭘 하려는 걸까?
혹시 남성용 소변기에 침을 뱉으려는 건가?
크로스오버의 시대다. 서태지의 노래 ‘하여가’는 국악과 랩을 오버랩시켰다. 밥과 햄버거가 만나 라이스버거가 나왔다. 보수적이라는 학계에서도 학과 간의 벽을 허물고 서로의 전공을 넘나들며 공동연구를 기획하기도 한다. 퓨전 재즈를 시발점으로 음악에서 시작된 크로스오버의 개념은 대중문화를 중심으로 확산되면서 이젠 이 시대를 규정짓는 개념어가 되었다.

서로의 경계를 넘나들며 교차를 통해 새로운 융합을 이루어내는 이같은 자유로움은 모더니즘의 계몽 이성에 입각한 논리적이고 질서정연한 사고체계를 이 사회가 벗어 던졌다는 것을 뜻한다. 크로스오버가 가능한 것은 기존의 정답이라고 인정되어 왔던 것에 대한 해체가 선행되었기 때문이다. 정답은 하나가 아니라 둘, 셋일 수도 있다. 아니 없을 수도 있다. 해체주의 시각은 사물에 대한 인식을 제로 베이스에서 다시 시작하게 만든다.

크로스오버의 개념이 신성불가침이라 생각되었던 젠더의 영역에도 뿌리내리고 있다. 하리수의 사회적 부상은 인간 염색체의 절대적 이분법적 편가름을 가볍게 비웃었다. ‘육체적인 성과 정신적인 성이 반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란 사전적 정의를 가진 트랜스젠더는 게놈의 해체이자 크로스오버다. 이제 이 세상은 남자와 여자, 그리고 제3의 성 트랜스젠더로 구성되었다고 선언하지 않을 수 없다. 모든 사람들이 사회적 학습을 통해 트랜스젠더의 존재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 사회적 학습의 텍스트로 광고가 등장했다는 것은 간과할 일이 아니다. 언더그라운드(underground)에 묻혀 있던 트랜스젠더의 존재가 온 더 그라운드(on the ground)로 올라온 것은 하리수가 등장하는 광고를 통해서였다.

SICIS라는 이탈리아 인테리어 건축 자재 업체 광고를 보자. 사이버 느낌을 주는 벽면에 남성용 소변기가 붙어 있다. 그 앞에 검은색 시폰 재질의 얇은 드레스와 가늘게 날이 선 샌들을 신은 여성이 옷을 걷어 올리고 남자처럼 소변을 보려 하고 있다. 카피는 “강철:모자이크 장식의 새로운 젠더” 다. 트랜스젠더를 소재로 하여 타일이 아닌 강철이 인테리어 재료의 새로운 젠더(?)로 부상했음을 알린다. 이 광고는 기묘한 감정을 불러 세운다. 남자의 소변기에 겉으로 보기에 여자인 존재가 달라붙어 있는 광경은 어긋난 콘텍스트를 형성한다. 그 어긋난 콘텍스트는 에로틱한 이미지를 불편하게 전달한다. 낯익은 상황이 갑자기 낯설게 치환됨으로써 심리적 부적응 상태를 초래한다. 완벽하게 낯선 것을 접할 때보다는 낯익은 것이 낯설게 느껴질 때 적응되지 않는 불편한 심기는 더 커진다.

그 기묘한 분위기는 바로 제품이 지니고 있는 고유의 분위기다. 욕실같은 곳의 인테리어를 장식하던 타일 대신 강철로 마감된 벽과 바닥은 낯설다. 그 어긋난 콘텍스트는 제품의 독특함과 그 독특함이 주는 생경한 세련됨의 느낌을 드러낸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 낯선 장식재의 느낌을 부각시켜주는 것은 바로 트랜스젠더의 등장이다. 이미 형성되어 있는 공간에 트랜스젠더 하나만을 첨부함으로써 그로테스크에 가까운 스타일리시 제품의 이미지를 효과적으로 각인시킨다. 자동차란 사물에 성적 충동을 느끼는 사람들이 등장하는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영화 ‘크래시’를 보는 느낌이다. 자동차의 메탈과 인간의 말랑거리는 피부가 접합하는 순간의 그 기묘한 느낌이란!

가히 크로스오버의 시대다. 건물의 외관이나 뼈대를 장식하던 강철이 타일과 같은 인테리어 소품으로 넘어왔다. 사물에서의 젠더 개념도 흐려지고 있다는 얘기다. 한 가지로 규정된 정체성이 상실되고 있는 것이다. 제 위치에서 고유의 기능을 하던 것들이 반란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인간의 성 정체성이 허물어지고 있는 시대에 그 무엇인들 가능하지 않겠는가. 이 세상의 모든 매뉴얼이 다시 작성되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김홍탁 광고평론가·제일기획 크리에이티브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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