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속의 에로티시즘]聖과 性의 위험한 만남 '베네통-시베어'

  • 입력 2002년 5월 9일 14시 48분


신부와 수녀의 키스를 담은 베네통 광고
신부와 수녀의 키스를 담은 베네통 광고
광고에서 다루기를 꺼리는 소재들이 있다. 인종문제, 젠더, 종교 같은 것들이다. 이유는 벌집을 쑤셔놓을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일상의 대화에서 페미니즘이나 종교를 소재로 삼을 때는 아무래도 논쟁이나 언쟁으로 비화될 가능성이 높은 것도 같은 이치이다. 특히 종교는 섣불리 광고의 소재로 삼으려 하지 않는다. 성역에 대한 도전으로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종교는 참으로 오랜 세월 인간을 길들여 온 절대자 아니던가. 우리는 무엇 때문에 그 절대자에 기대는가? 수렴해 들어가 보면 인간은 죄인이기 때문이라는 명제에 다다른다. 죄의식은 불안한 존재인 인간에게 보편적으로 내재해 있는 본질이다. 특히 기독교는 인간의 원초적 죄의식을 부각시켜 왔다. 그래서 어떤 이는 서구 문화를 죄의식의 문화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렇기에 우리네 유전자에 전해 오는 죄의식은 종교의 신성함을 더욱 우러러 받들게 만든다. 나의 죄를 사하여 줄 유일한 치유책이기 때문이다.

그 신성함에 딴죽을 건 광고가 있다. 고결하고 일상적 욕망으로부터 초연해야 할 성직자들을 일상적 욕망 중에서도 가장 터부시되는 성적 욕망과 결부시킨 이 광고는 그야말로 마음 다져 먹고 저지른 파격이다. 성직자가 음심을 품는다는 것은 눈에 보이는 도적질보다 죄질이 더 나쁜 것 아니겠는가.

신부와 수녀의 키스 신을 담은 베네통 광고는 이 분야의 대표적 광고로 알려져 있다. 군더더기 하나 없는 미니멀 아트워크의 정수를 보여주는 이 광고는 에이즈, 전쟁, 사형수 등의 쇼킹한 장면을 앵글에 담아 늘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켰던 사진작가 올리비에로 토스카니의 작품이다. 검은 옷의 사제와 흰 옷의 수녀의 입맞춤으로 화해되는 흑백구도는 선과 악, 죄와 면죄 등의 이분법적 개념이 등 돌리지 않고 서로를 얼싸안고 있음을 보여준다. 수많은 키스신이 광고 이미지를 장식해 왔지만 이 광고에서처럼 뜨겁게 표현되지 않았으면서도 뜨겁게 읽히는 경우는 찾기 힘들 것이다. 가장 성(聖)스러워야 할 순간에 가장 성(性)스러운 것을 접목시켰기 때문이다.

극과 극이 결합하는 순간에는 언제나 긴장의 파문이 인다. 흠이 있다면 너무나 광고적으로 아름답게 치장되어 리얼리티가 살아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연출된 쇼킹함, 그것이 토스카니 사진의 약점이자 강점이다.

여성 언더 웨어 시베어 광고. 언더 웨어만 입은 수녀가 묵주를 잡고 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TBWA에서 제작한 여성 언더웨어 시베어(She Bear)광고 역시 세속적인 욕망과 성직의 품위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하는 수녀의 모습을 담았다. 한 수녀가 언더웨어만 착용한 채 목에 걸린 묵주를 손으로 잡고 있다. 음심을 품은 자신을 뉘우치기 위해 묵주기도를 올리는 것일까? 남자에게 보여 줄 일이 없을 언더웨어가 그녀에겐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카피는 ‘너 자신을 위해 입어라’.

보여 줄 수는 없기에 더욱 집착이 가는 미묘한 아이러니. 이 광고는 금지된 욕망에 대한 대리 만족을 얻고 싶어 하는 여성의 내밀한 심리를 잘 건드리고 있다.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일생에 단 한번의 우연한 기회를 맞이하는 백일몽을 꾸고 있을지도 모른다. 언제 닥칠지 모르는 기회에 대비해 언더웨어에 늘 신경을 쓰는 것은 플레이보이의 철칙이다. 플레이보이와 수녀는 대척점에 있지만 가장 형이하학적인 욕망을 보여주는 내면의 풍경은 이처럼 같을 수도 있는 것 아닐까?

“이웃집 여자에게 음심을 품었습니다.” “하루에 묵주기도 10번을 바치시오.” 지금도 성당에서 이루어지는 고백성사의 풍경이다. 인간을 죄의식에서 벗어나지 않게 하려는 기제는 아직도 남아있다.

우리는 죄를 고백하고 성직자는 말로써 사하여 준다. 성직자의 말은 죄를 사하여 주는 절대 권력이다. 두 편의 광고는 그 절대 권력과 대항하고 있다. 솔직히 말하면 까불어 보고 있다.

김홍탁 광고평론가·제일기획 크리에이티브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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