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일기]여보 힘내세요, 제가 있잖아요

  • 입력 2002년 2월 28일 14시 22분


늦은 밤 남편을 기다리며 만지작거리던 초콜릿을 냉장고에 넣어두었습니다. 투덜거리며 자정을 넘긴 밸런타인 데이도 냉동시켜 버렸지요.

다음 날 힘들게 쓰린 속 부여잡고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는 남편의 등을 엘리베이터에 밀어넣고 나니 그제서야 초콜릿 상자가 기억나더군요. 차에 시동을 걸고 출발하려는 남편을 5층 베란다에서 불러세워 초콜릿을 던집니다. 씨익 웃으며 손 흔들어주는 남편의 뒷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다 괜히 붉어지는 눈시울에 후다닥 문을 닫아버립니다. 오늘따라 유난히 어깨가 왜 그리 힘겨워 보이던지….

남편을 처음 만났던 14년 전 가을이 생각났습니다. 세상 걱정 하나없는 당당함과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긴 머리를 쓸어넘기던 그 멋진 모습이 어느덧 눈밑에 주름이 자리잡고 적당히 뱃살이 나온 모습으로 변했습니다. 이젠 정말 어릴적 쫄랑거리며 사탕 얻어먹던 이웃집 아저씨의 모습입니다.

함께 살아온 세월만큼 넉넉해지는 편안함, 그저 눈만 끔벅거려도 서로를 읽을 수 있는 우리.

그래요, 우리. 이제 당신과 나는 한 남자와 여자가 아닌 우리라는 이름으로 묶여 있군요. 세월은 당신의 눈가에 주름을 만들고 뱃살을 늘어나게 했지만 여전히 멋있는 그 가을밤의 내 남자이고 다정한 내 남편입니다.

힘내세요. 세상에 나가서 힘이 들고 지칠 때 당신을 위해 기도하는 가족이 있음을 매순간 느낄 수 있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그 힘이 당신을 지탱시키고 씩씩하게 만들 수 있는 원동력이 되리라 믿으며 아이들과 함께 당신의 기쁨이 되어 항상 이 자리에 있겠습니다. 힘에 겨워 뒤돌아 봤을 때 당신의 건강과 파이팅을 위해 기도하는 모습으로 이 자리를 이쁘게 지키고 있을게요.

서미령·경기 수원시 팔달구 매탄동 삼성2차아파트·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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