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향민 곽선부 할머니 "돈이 뭔소용…가족이 없는데"

  • 입력 2002년 2월 9일 16시 17분


북에 두고 온 언니들 생각에 눈물짓는 곽선부 할머니.
북에 두고 온 언니들 생각에 눈물짓는 곽선부 할머니.
“북에서의 설은 못 먹어서 힘들었는데 여기서는 정을 나눌 사람이 없어 더 힘들어요.”

1947년 어머니와 함께 월남한 뒤 6·25전쟁이 터지는 바람에 북쪽에 있던 언니들과 헤어져 이산가족이 된 곽선부(郭善富·76) 할머니.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악의 축’ 발언으로 올해도 이산가족 상봉이 어려워지는 상황에서 쓸쓸한 설을 맞게 된 곽 할머니는 북에 있을 언니들 생각에 벌써부터 눈시울이 붉어졌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어머니와 세 명의 언니와 함께 지낸 평양에서의 설은 어려운 가정형편 탓에 즐겁지만은 않았다. 설이면 고모 할머니집에 가서 만둣국 부침개 등 설음식을 얻어먹어야만 했다.

“그땐 설인데도 못 먹고 잘 입지도 못했어요. 그저 배불리 먹고 좋은 설빔 입고 세뱃돈도 많이 받고 그런 게 정말 부러웠는데….”

가난이 서러워 악착같이 재산을 모은 곽 할머니는 이제는 어엿한 서울 도심의 6층짜리 빌딩 주인이 됐다. 건물 임대료만 받아도 생활이 넉넉할 정도로 부자가 된 곽 할머니지만 이 건물 5층에 있는 할머니 방은 사람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득했다.

1975년 남편과 사별하고 딸마저 할머니를 떠난 상태. 북에 두고 온 언니들 생각에 북에서 온 사람이라면 무조건 보살펴줬던 곽 할머니는 급기야 탈북자에게 자신의 딸을 내주었다.

“내 자식 같아 결혼시키고 가게까지 마련해 주었는데…. 3년 전 딸과 함께 중국으로 가버렸어요. 올 설에는 꼭 온다고 했는데 소식도 없고….”

할머니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올 설에도 음식조차 마련하지 않을 거라는 곽 할머니. 이제는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함께 할 사람이 없어 더욱 서럽다.

박민혁기자 mh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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