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박물관 개관에 부쳐]정진석/"입체적 역사 학습場"

  • 입력 2000년 12월 15일 19시 03분


한국 최초의 근대 신문 한성순보가 창간된 1883년부터 치면 117년 만에 신문의 역사를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는 신문박물관이 문을 열었다.

한국 신문의 역정(歷程)이 다른 나라의 그것과 구별되는 가장 큰 특징은 언론이 진실을 기록하는 역할만 수행한 것이 아니라 역사의 주역으로도 기능을 했다는 사실이다. 한국 신문은 일제의 한반도 강점과 6·25전쟁, 그 후의 정치적 격동 등을 생생히 기록했을 뿐만 아니라 많은 언론인들이 기우는 국운을 만회하기 위해 역사의 현장에 뛰어들었다.

현대사의 여러 주역들 가운데 많은 언론인들이 포함되어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언론인으로는 생각지도 않았던 정치인, 독립운동가, 문인, 사학자, 교육자 등이 필봉을 잡은 언론인이거나 어떤 형태로 언론과 관련을 맺었다. 서재필을 필두로 이승만, 박은식, 양기탁, 장지연, 이종일, 신채호, 오세창 등은 언론인이면서 독립운동가였고 이인직, 최남선, 이광수, 홍명희, 주요한, 염상섭, 현진건 같은 문단의 거목들도 언론인으로 활약했다. 광복 후에 정치가로 변신한 김성수, 송진우, 여운형, 장덕수, 안재홍 등도 언론에 관여했고 오늘의 정계에도 언론인 출신들이 많다. 그러기에 한국 현대사의 주류는 언론의 역사가 핵심을 이루는 것이다.

이제 신문박물관이 개관함으로써 격동의 현대사를 당시의 지면을 보면서 직접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발행되는 시점에는 세상에서 가장 흔한 물건이 신문이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고 보면 신문은 더없이 소중한 역사의 타임캡슐이 된다. 선악이 공존하는 사건의 현장에 가장 근접했던 증인이면서 흘러간 시대의 흐름을 비춰주는 역사의 실록이 되고, 서민의 애환이 담긴 귀중한 보물로 승격한다.

한 세기를 넘기는 동안 이 땅에는 수많은 신문이 시대의 변천에 따라 부침을 거듭했다. 당대의 여론을 좌우하고 역사의 흐름을 바꿀 정도의 위력을 지녔던 신문이 이름만 남기고 사라진 경우도 있다.

이 소중한 유산들이 일제 치하와 광복 후 전쟁의 참화를 겪으면서 많이 유실되었다. 도서관에서도 50년대 이전의 신문은 희귀본 또는 귀중 장서로 분류되어 열람이 어렵다. 손이 닿거나 복사 과정에 지면이 마모되고 손상되기 때문이다. 이 귀한 신문들을 모아 역사적 의미를 부여하고 일반이 손쉽게 접할 수 있도록 하는 곳이 신문박물관이다. 신문박물관은 언론의 역사에만 관련된 박물관이 아니라 현대사의 축도(縮圖)이다.

동아일보만의 박물관으로 마련된 것도 아니다. 한국 신문이 걸어온 발자취와 함께 신문이 기록한 역사를 포괄적이고도 입체적으로 구성하여 일반에게 공개하는 역사의 학습장이다. 역사학자나 언론 전공자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역사의 진실을 눈으로 확인하고 교훈을 얻을 수 있는 곳이다.

한말과 식민지 치하 일제의 엄혹한 검열로 압수당한 지면은 역사의 살아 있는 교재가 될 것이다. 특히 신문과 관련되는 만화, 소설, 광고, 언론인 등을 종합적으로 볼 수 있는 시설이 없었기에 국내 유일의 신문박물관 개관은 참으로 반가운 일이다.

새 천년이 시작되는 해에 신문박물관이 개관했다는 사실 또한 역사적인 상징성이 크다. 연구자들을 비롯하여 초등학생에서 대학생, 일반인에 이르기까지 신문이란 무엇이며, 우리가 어떤 현대사를 살아왔는지를 알아야 하는 모든 사람들이 손쉽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신문박물관이 단순히 보고 가는 박물관이 아니라 연구와 교육의 기능을 갖춘 박물관이 될 수 있도록 운영에 힘써 주길 바란다.

정진석(한국외국어대 교수·언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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