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卒취업난 현주소]"토익900점 넘어도 갈곳 없어요"

  • 입력 2000년 11월 17일 18시 42분


“6개월 전에만 복학했어도 이렇게 힘들지는 않았을 텐데…. 올 여름 졸업한 친구들은 다들 봄에 취직했거든요.”

세칭 명문사립대 4학년 이모양(24)은 지난해 1년간 휴학했던 것을 몹시 후회하고 있다.

96년 입학한 이양은 외환위기로 대졸 취업이 ‘정지’돼 어려움을 겪던 졸업반 선배들을 보고 졸업을 늦추기 위해 지난해 휴학했던 것. 6개월간 어학연수도 다녀오고 여유있게 취업준비를 마쳐 900점이 넘는 높은 토익점수를 받아뒀고 학점도 상위권. 하지만 올 가을 들어 지원한 10여곳의 대기업 채용에서 대부분 서류전형에서 탈락한데다 몇 군데의 면접에서조차 미끄러졌다.

▽3년 만의 취업대란〓졸업을 앞둔 대학생들은 외환위기 이후 3년 만에 다시 찾아온 ‘취업대란’에 한숨짓고 있다. 경기가 상승세를 타던 올해 초 대규모 채용계획을 발표했던 대기업들은 7월 이후 채용계획을 슬그머니 줄였다. 17일 현재 연말까지 남아있는 주요 대기업 기관들의 대졸 인력수요는 2000여명에 불과한 실정.

부도기업이나 퇴출 위기에 몰린 기업들의 채용이 전면 중지됐고 ‘잘 나가던’ 유무선 통신업계의 인력수요도 꽁꽁 얼어붙었다. 99년부터 대학생들의 취업에 숨통을 틔워 줬던 정보기술(IT)기업들도 사정은 마찬가지. 다음 라이코스 네이버 네띠앙 등 대표적인 닷컴기업의 직원수는 최근 3개월간 전혀 늘지 않았고 신규채용도 미미하다.

지난해부터 많은 대기업들이 ‘신채용원칙’을 채택해 소수 수시채용으로 경력직을 골라 뽑고 있어 대졸자들의 취업문은 더욱 좁아졌다. 경희대 경영연구소 이종구 선임연구원은 “올 하반기 채용된 1만명 중 신규인력과 경력직의 비율은 55 대 45 정도로 절반 가량이 경력직”이라고 설명했다.

▽휴학자 줄이어〓대부분의 대학의 취업률이 30%수준으로 주저앉자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 직후처럼 ‘때를 기다리기’ 위해 휴학하는 학생들도 늘고 있다. 내년 2월 고려대 심리학과 졸업 예정인 이재호군(25)은 “일부 인기학과에만 몇 안 되는 추천서가 집중돼 문과대 등에서는 구경하기조차 힘들다. 경기가 회복되길 기다리며 실력을 쌓기 위해 유학을 준비하고 있으며 주변에는 고시나 공무원시험 준비를 위해 휴학하는 친구들이 많다”고 말했다.

주요 대학의 2학기 휴학률이 30%를 넘어선 곳이 많아졌다. 서강대는 재적생 1만778명중 3834명이 휴학해 35.6%, 한양대는 2만2360명 가운데 7938명이 휴학해 35.5%의 휴학률을 보였다. 연세대도 7137명이 휴학해 휴학률이 28.9%로 크게 높아졌다.

▽취업 전략〓취업전문가들은 요즘 같은 상황에서는 시간을 두고 치밀한 취업전략을 세우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월간 리크루트의 오세인 편집장은 “기업들은 오히려 ‘쓸 만한 사람 구하기 힘들다’고 불평하고 있다. 경쟁력 있는 인력을 수시채용하는 방식이 보편화된 만큼 충분한 시간을 두고 준비해야 한다하며 마음에 차지 않더라도 일단 관련 업종에 취업해 경력을 쌓겠다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박중현·김창원·김현진기자> sanjuck@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