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책]대자연의 아름다움 미학으로 승화시켜

  • 입력 2000년 10월 27일 18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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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위기는 학문의 위기를 동반했다. 지난 30년, 서구 대학들은 빠른 속도로 ‘환경’에 관한 새로운 교과과정과 학문영역들을 개척해냈다. 환경미학은 그 한 영역이다. 이 중에서도 환경미학에 미학의 한 분과학문이란 정체성을 부여하고 연구체계의 모델을 시도한 대표적인 책이 세판마의 이 책이다.

1960년대 오스본과 헵번에서 시작한 환경미학은 인간과 자연을 대립시킨 이분법적 자연관에 대한 반란으로 등장했다. 초기 환경미학은 물질진보의 숭배를 거부하고 상업화된 예술작품과 그것이 재현하는 세계로부터의 소외에 도전하기 위해, 순수 ‘자연’의 미학에 관심을 집중했다. 1986년 핀란드어로 출판된 이 책은 예술작품의 방법론을 무차별적으로 환경에 적용한 미학과 인간의 손이 닿지 않은 1차 자연을 대상으로 한 자연미학을 모두 넘어서려 시도하고 있다.

이 책은 총 3장으로 구성돼 있다. 1장에선 미학, 예술철학 그리고 비평철학의 전통에 기초해 환경미학을 예술의 허구세계와는 다른 현실세계의 미적 가치를 논하는 학문으로 정의하고, 이와 연관된 물음들을 도출한다. 이 환경미학의 주요 논제들을 디딤돌로 해서 환경미학은 2장과 3장을 거치면서 미철학에서 메타비평으로 그리고 윤리학으로 확장된다.

미적 가치는 예술작품만이 갖는 것인가? “미적 가치는 인간에서만 관찰되는 것이 아니다.” 환경에도 미적 가치가 내재해 있다. 말벌의 집, 비버리가 쌓은 댐, 지리산의 물봉선, 부안의 낙조 등 물리 생물 환경에서 우린 아름다움을 관찰한다. 그런데 이 미적인 기준을 선택 판단 부여하는 것은 누구인가? 이 질문에서 세판마에게 미적 가치의 존재와 그 판단은 구별된다. 그에게 미적 가치 부여는 인간의 관찰을 토대로 하기 때문이다.

대상에 대한 미적 판단은 순수할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 물론 환경에 대한 미적 평가는 과학지식에 기초하지만 동시에 제도적으로 채택되고 학습된 미적 훈련과 관점에 기반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환경미학은 환경이 지닌 미적 판단의 근거에 대해 묻는 환경비평의 비평이 된다.

메타비평으로서의 환경미학에서도 여전히 미학의 수동성은 남는다. “과연 환경미학이 능동적인 실천성을 동반할 수 있는가?” 저자에게 환경미학은 환경오염 및 파괴라는 현실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때 보다 의미 있다. 그에게 환경미학은 이제 기술(記述)에서 규범(規範)으로 발전해 환경윤리학에 속하고 실천영역의 규범이 된다. 예컨대 환경미학은 환경교육의 근거이며 내용이다. 환경의 미적 본성에 대한 이해는 자연과 인조환경을 보호하는 출발점이 되기 때문이다. 어떤 사물에서 가치를 발견할 때, 누가 이를 보호하지 않겠는가?

이 책은 환경보호와 보전의 당위성을 미적 가치의 영역으로 확장시켰고, 이에 대한 학술적 논구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 있다. 그리고 환경영향평가 등 법체제의 재정비와 환경교육의 내용확장에 많은 시사점을 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기술방식은 정태적이다. 그 이유는 자신의 미적 대상에 대한 정의와 달리 환경을 물리세계와 경관 명승지 그리고 예술품으로 접근하고 미적 가치를 결정하는 제도에 주목하지만, 미적 경험이 일어나는 총체적 상황으로서의 미적인 장에 대한 분석이 결여됐기 때문이다.

▽유리오 세판마 지음/409쪽/1만 5000원/신구문화사▽

문순홍(성공회대 NGO대학원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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