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판기획전/유럽은?]"10년전 그자리 그간판 그대로"

  • 입력 2000년 10월 17일 19시 08분


일화 하나. 사진작가 K씨는 10년 전 유럽지역의 간판들을 촬영해 돌아와 화보집을 냈다. K씨는 얼마 전 달라진 유럽 거리의 간판을 촬영하기 위해 다시 출국했지만 이번에는 단 한 장의 사진도 찍지 못하고 돌아왔다. 10년이란 세월이 지났지만 거리의 간판은 10년 전 그대로였기 때문이다.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 공동회원국인 유럽 각국의 간판에는 세월의 향기가 그대로 묻어 있다. 대부분의 업소가 10년 이상 영업하고 있는데다 애당초 ‘간판으로 승부하겠다’는 한국식 상술은 찾아볼 수 없어 언제나 그 곳에는 그 간판이 그대로 있다.

또 각각의 간판에는 디자이너의 철학과 상점에 대한 정보가 담겨 있다. 빵집 간판은 막 구워 낸 빵의 향기가 나는 듯한 모양으로 만들어지며, 꽃집의 간판에서는 향긋한 꽃내음이 전해진다. 작고 단촐하지만 분위기와 정보는 오히려 알차다.

프랑스 파리의 경우 시내를 세 구역으로 구분, 옥외 광고물의 주요 색상을 지정해 도시 전체의 색감을 관리한다. 특히 샹젤리제 거리의 간판은 흰색과 검은색 등 무채색과 황금색만 사용하도록 해 맥도널드마저 간판의 바탕색을 빨간색 대신 황금색을 쓴다. 오스트리아에서는 화장실 간판에서도 아름다운 클래식 선율이 흘러나오는 듯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유럽의 간판들은 이처럼 건물과 조화를 이루며 상징과 시각 효과라는 정확한 목적을 가진 하나의 공예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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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우리나라의 간판은 유럽의 것과는 달리 상업적 목적만 강조할 뿐 도시 미관이나 주변과의 조화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디자인미술관 큐레이터 김명한씨는 “유럽의 품격있는 간판이 유럽인을 품격있게 만든다는 지혜를 아셈을 계기로 우리도 배워야 한다”고 제안한다.

<박정훈기자>sunshad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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