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한수산의 성지순례 에세이 '길에서 살고 길에서 죽다'

입력 2000-09-08 18:25수정 2009-09-22 05:18
공유하기뉴스듣기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세례를 받고 있는 작가 한수산
작가 한수산(54). 데뷔작 ‘4월의 끝’에서부터 ‘부초’ 등 장단편을 통해 말간 햇살같이 투명한 감수성의 언어를 견고하게 쌓아올려온 만년청춘의 작가.

그는 최근 세종대 국문과 교수 직을 휴직했다. ‘필생의 작업’으로 작정한 세 편의 장편에 힘을 쏟아붓기 위해서다. 그 최종의 지점에는 한국 가톨릭 유입사를 다룬 대작이 준비된다.

“외래종교와 한국의 원형적인 정신이 어떻게 갈등하고 화해하는 지를 4번의 박해를 배경으로 그려낼 생각입니다. 어쩌면 마지막 작품이 될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준비중이지요….”

11년전 이맘때 백두산에서 고 이경재신부에게 영세를 받아 ‘요한 크리소스토모’가 되었다. 그에게 신이란 무엇인가. 무엇이 희생과 구원에 대한 탐색으로 그의 발걸음을 이끌었을까. 궁금증을 풀어주듯 그가 국내 성지순례 에세이 ‘길에서 살고 길에서 죽다’(생활성서)를 선보였다.

“순교자들의 발길을 따라 그들의 자취를 내 몸에 심자는, 그렇게 해서 내가 해야 할 일의 밑그림을 그리자는 생각이었죠.”

여전히 해말간 그의 언어는 생의 덧없음과 청춘의 상실을 묘파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절대자의 신비한 의도를 알아내고자 하는 탐색의 언어가 된다.

김대건 성인의 어머니가 아들을 마지막으로 떠나보낸 골배마실에서, 44명의 성인이 칼에 스러져 간 서소문에서, 3000줄기 무명 순교자의 피가 흐른 해미에서 그는 박해받은 초기 신앙인들의 통절한 슬픔을 떠올린다.

그리고 ‘찾아오는 이마다 믿음의 불씨를 껴안고 가는 성스러운 자리가 되어야 한다’고 되뇌인다. 그러기에 그에게는 성지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온갖 난장판이 마음편하지 않다. 모든 것을 버린 이들의 자취 앞에서 돌 하나 나무 한그루까지 봉헌자의 이름을 남겨두려는 현시욕, 성지 앞에서 펼쳐지는 술판과 대로위 차들의 굉음, 성소가 ‘날조’됐다는 표지판….

“이것이 진정으로, 빛나는 어른을 모시고 있는 우리의 모습이란 말인가. 이분들은 지금 우리에게서도 버림받아 피흘리고 있는 또하나의 증거는 아닌가.”

<유윤종기자>gustav@donga.com




Copyright ⓒ 동아일보 & donga.com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동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