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책]'슬픈 궁예' 역사의 敗者 궁예 바로보기

  • 입력 2000년 8월 25일 20시 01분


TV드라마 '태조 왕건'에 궁예로 나오는 탤런트 김영철
TV드라마 '태조 왕건'에 궁예로 나오는 탤런트 김영철
애꾸 눈에 거친 모습, 광포하고 괴팍한 성격. 보통 사람들의 머리에 각인된 궁예의 이미지다. '삼국사기' '고려사' 등 관련 역사서 역시 궁예를 악인으로 기록하고 있다.

과연 그러한가. 역사의 대부분이 승자의 기록이었다는 점을 돌이켜볼 때, 패자인 궁예 역시 승자에 의해 의도적으로 왜곡된 대목은 없을까.

이 책은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궁예에 드리워진 편견을 걷어내고 그 실체에 객관적으로 접근하려 한다. 저자는 궁예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경기대 교수(한국사).

우선 궁예의 난폭한 성격에 관한 부분. 궁예는 의심을 일삼았고 부인 강씨와 두 아들을 죽였다. 사람들은 이러한 광폭함이 궁예 성격의 전부인 듯 알고 있다. 하지만 이는 말년의 성격일 뿐, 이것만으로 궁예를 파악하는 것은 옳지 않다.

사가들은 또한 이를 두고 궁예가 신라왕(헌안왕 혹은 경문왕)의 서자로 태어나 왕실에서 버림받은 충격, 그 정신분열의 결과로 이해해왔다. 저자는 이것이 잘못된 시각이라고 단언한다. 실제로 궁예가 왕의 아들이라는 설도 확실치 않다고 덧붙인다.

잦은 국호 연호 변경에 관한 문제. 궁예는 불과 십수년 사이에 국호를 고려 마진 태봉으로, 연호를 무태 성책 수덕만세 정개로 바꿨다. 이를 놓고 후대는 궁예를 광인이라 불렀다. 그리고 그의 출생에서 비롯된 정신불안의 결과라고 말해왔다.

저자는 그러나 국호의 변경은 시의적절하고 합리적인 선택이었다고 말한다. 첫 국호를 고려로 정한 것은 초기 점령지역이 고구려의 옛땅이라는 사실에 주목한 결과였다. 이후 신라 백제 지역을 영토로 편입시키면서 고구려 중심의 국호를 바꿔야 했다. 고구려 백제 신라를 모두 포함하는 마진(대동방국이란 뜻)으로 바꾼 것은 그래서 옳은 선택이었다. 저자에 따르면, 국호 변경은 고구려적 요소와의 결별이자 삼국통일의 의지를 보여준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고구려계의 불안감과 반발을 가져왔고 이때부터 왕건의 역모가 시작됐다.

궁예의 미륵신앙에 관해, 사람들은 궁예가 스스로 미륵불이라고 자처한 것을 놓고 과대망상이라고 폄하해왔다. 하지만 궁예의 미륵불 사살은 당시 지배방법의 한 형태였을 따름이라고 저자는 반박한다. 궁예의 미륵신앙만 유독 잘못된 것으로 보려는 시각은 의도적인 편견이다.

궁예의 최후닌? '고려사'는 궁예가 궁궐에서 축출된 뒤 보리 이삭을 훔쳐먹다 백성들에게 살해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저자는 육당 최남선이 철원지방에서 채록한 저설 내용에 주목한다. 이 전설에 따르면 궁예는 버림받은 폭군이 아니라 사랑과 존경을 받다 스스로 자결했다.

정사(正史)와 전설이 왜 이렇게 다를까. 이 대목에 이 책의 핵심 메시지가 있다.

"왕건이 궁예를 몰아낸 것은 분명 역모였다. 궁예가 고구려 중심주의를 포기하자 불안을 느낀 왕건과 고구려계 세력이 역모를 꾸민 것이다. 그렇기에 그 역모는 명분이 약했다. 그래서 반란의 명분을 세우기 위해 궁예의 포악함을 지나치게 부각시켰을 수 있다. 이럴 경우, 정사는 왜곡될 가능성이 높다."

▼'슬픈 궁예'/ 이재범 지음/ 푸른역사/ 271쪽 8000원▼

<이광표기자>kplee@dog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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