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 협상안 내용]"병원조제 내년초까지 허용을"

  • 입력 2000년 8월 14일 18시 46분


의―정(醫―政)대화의 물꼬가 트일 듯 말 듯 하고 있다. 의료계의 각 직능단체를 망라한 ‘비상공동대표 소위’는 14일 최종 협상안을 만들었다. 일부 의료기관은 약 구입을 위해 처방전이 필요한 환자들에게 처방전을 써주는 등 다소 활기를 되찾고 있다.

그러나 협상 시기와 관련해 전공의들이 “최종 협상안이 나오더라도 전국의사대회 경찰 폭력진압에 대한 정부의 사과 및 구속자 석방 수배 해제 등의 조치가 이뤄지지 않는 한 협상은 없다”는 강경 입장을 고수, 진통을 겪고 있다.

▽의료계 요구사항 및 타결 전망〓이날 속개된 소위는 당초 일찍 끝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최종 협상안을 확정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핵심은 약사법 개정 문제. 의료계는 기관지염 천식 위궤양에 쓰이는 일반의약품의 최소 포장단위를 30알로 해야 한다는 요구를 다시 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대체조제를 할 수 없는 상용처방의약품을 600품목으로 제한한 것은 ‘작가에게 600개의 단어로 글을 쓰라’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 약사들의 끼워 팔기 처벌조항 명시 및 일반의약품 낱알 판매 금지를 5개월 유예한 조치와 관련, 같은 기간 병의원 내 조제도 허용해야 한다는 요구사항도 나왔다.

또 의보수가와 관련, 정부가 현행 의보수가가 원가의 80%이며 2년 내에 100%로 현실화하겠다고 밝혔으나 자체 조사결과 원가의 65%이며 조속히 현실화해야 한다는 요구를 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언제든 대화에 나선다는 방침이지만 약사법 재개정을 약속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의료계 요구사항 중 일부는 의약분업을 시행해 가며 보완해 나가겠다”고 말하는 등 양측의 입장 차이가 커 협상이 진행되더라도 합의점을 찾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여기에 전공의는 이날 “소위가 전공의의 의견을 무시하고 정부와 협상에 들어갈 경우 소위 자체를 인정하지 않겠다. 지금은 협상의 시기가 아니다”며 장기전 불사를 선언, 사태 해결을 어둡게 하고 있다.

▽의료공백 완화〓이날도 동네의원의 47.4%가 문을 닫았으나 이는 지난주의 60%에 비해 상당히 줄어든 비율. 특히 서울대병원, 연세대 신촌세브란스병원 등에선 처방전 발급이 필요한 환자들을 위해 따로 창구를 만드는 등 환자 편의를 돌보는 모습이 역력했다.

서울대병원은 일부 과를 제외하고는 실질적으로 외래 진료를 하고 있어 이날도 평소의 3분의 2 정도의 환자들이 진료를 받고 돌아갔다. 또 항암제 인슐린 등 지속적으로 투약이 필요한 환자들을 위해 별도의 처방안내센터를 설치했다. 병원측은 오늘 예상진료인원을 3400여명으로 추정했다.

이날부터 의대교수들이 철수한 연세대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도 만성질환자 등 투약이 필요한 환자를 위해 창구를 마련했다. 내과 앞에서 진료를 기다리던 이모할머니(70)는 “고혈압과 당뇨병으로 늘 약이 필요하다”며 “처방전을 받는 데 별 문제가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평소 80건에 이르던 수술환자는 이날 14건에 불과했고 병상가동률이 47.3%에 머물렀다.삼성중앙병원은 이날부터 진료과별로 교수 1명씩이 남아 항암환자와 중환자만을 진료하고 있으나 약이 필요한 만성질환자들에게 개별적으로 처방전을 발급한다고 연락하고 있다.

한편 서울대병원에는 12일 ‘의사를 테러하자’는 제목으로 의료계 폐업을 맹비난하는 편지가 팩스로 전송돼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경찰은 병원 폐업에 불만을 품은 사람이 팩스를 보낸 것으로 보고 발신지 추적을 하고 있다.

<서영아·정용관기자>sya@donga.com

의료계 주요 요구사항 (잠정안)

약사법 재개정 약속일반의약품 낱알 판매하는 내년 초까지 병의원 내 조제 허용
약국 ‘끼워 팔기’ 처벌 조항 명시
처방전은 1장만 발부 및 질병 분류기호 기록 삭제
일반의약품 최소 포장단위 30알(단 예외품목 인정)
대체조제할 수 없는 상용처방의약품 600품목으로 제한한 규정 삭제
대체조제로 인한 약화사고 시 책임소재 명확화
의료환경 개선의보수가 조기 현실화, 처방료 진찰료 통합, 수가계약제 정부 개입 여지 봉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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