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지금 ‘두발의 자유'와 관련한 옛기사 한 편을 보고 있습니다. 1976년 6월16일자 동아일보 기삽니다.
▼장발자 출입금지 ▼
<오전 10시 서울 광화문 네거리. 장발 단속 첫날인 16일 전국경찰은 가두삭발 등 대대적인 강제 단속을 펴는 대신 계몽과 권유위주의 조용한 <장발 추방운동>을 벌였다. 치안본부는 단속에 앞서 15일 무리한 단속을 지양하고 적발된 장발자 가운데 공무원 직장인 학생 등 신분이 뚜렷한 사람에 대해서는 소속 기관장에게 통보, 조발토록 종용하고 다만 무직자 청소년 부랑아 등 히피성 장발족에 한해 조발을 권유, 조발 후 훈방하는 한편 이에 불응할 때만 즉심에 넘기도록 재차 지시했고 서울시경의 경우 16일 정오 현재까지는 한건의 장발단속 보고도 들어오지 않았다.
(중략)
명동 충정로 등 유흥업소가 많은 중부경찰서의 경우는 관내 이발소와 학교, 각 기업체 등에 전직원과 종업원들을 솔선 조발시키도록 권장하는 전단 8천장을 찍어 돌렸고 접객업소마다 <장발자는 출입할 수 없습니다>는 푯말을 문앞에 걸어놓도록 요망했다.(중략)
한편 단속에 앞서 많은 사람들은 머리가 별로 길지 않는데도 혹시 길가다 걸려 망신당하기 싫다면서 머리를 짧게 깎기도 했다. 이날 치안본부의 한 관계자는 이처럼 단속을 완화한 것은 장발추방령이 내려진 지난 한 달동안의 계몽기간 중 장발 풍조가 크게 개선됐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한편 문교부는 16일 국민학교어린이들에 대한 장발단속을 중지하도록 각 시도교위에 긴급 지시했다. 문교부의 이같은 지시는 일부 국민학교에서 어린이들의 머리를 지나치게 깎도록 하는 등 과잉 단속에 따른 부작용이 많기 때문에 내려진 것이다.
(하략)>
▼고속도로 건설의 주역 `바리깡' ▼
76년이면 제가 고등학교 2학년 시절입니다. 교문에서 훈육주임한테 바리깡으로 머리를 밀리던 추억이 생생하게 떠오르는군요. 이런, 그러고보니, 지금 제가 ‘추억'이라고 썼습니까? 글쎄요, 그 모멸감, 그 수치심, 그 적개심 같은 것들마저 ‘추억'이 될 수 있을지....
70년대의 키워드 목록 가운데 하나로 ‘장발 단속'을 올린다면 어떻습니까. 언젠가 TV에서, 아마 ‘그때를 아십니까'류의 프로였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70년대의 장발 청년을 고발하는 뉴스 꼭지를 본 적이 있습니다.
흑백 자료 화면을 보니 정말 코미디가 따로 없더군요. 머리가 길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청년들을 범법자처럼 경찰서로 잡아들여 바닥에 꿇어앉히고 바리깡으로 고속도로를 밀고....웃기는 것은 당시 방송기자의 멘트였습니다. 그 방송기자는 마지막에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런 놈들이 이담에 사회에 나가 뭐가 될지 걱정입니다!'
▼차렷! 열중셧! ▼
당시는 유신, 긴급조치 시대였지요. 유신 파시스트들은 반공과 더불어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엄격한 도덕률을 요구했습니다.(장발은 부도덕하고, 단발은 도덕적이라니!) 차렷, 열중셧 외의 행동을 하는 `것들'은 다 왕따시켰습니다. 그런 정서 속에서 젊은이들의 장발마저 화가 났던 겁니다.
그런데 다 아시는 얘기지만, 파시즘이 횡행하는 사회일수록 ‘거리에 침 뱉지 말자' ‘술 취하면 혼난다' ‘근검절약하자' 식의 캠페인을 즐겨 하잖습니까. 하여튼 당시의 반공제일주의는 고등학교 운동장마저 병정놀이의 마당으로 만들었고, 코미디같은 도덕주의는 나라 전체를 위선으로 뒤덮었습니다.
▼짐(朕)이 발(髮)을 단(斷)하노라▼
낡은 신문 스크랩을 옆에 두고 또 한편의 단발령(斷髮令)과 관련된 글을 읽고 있습니다. `짐(朕)이 발(髮)을 단(斷)하노라'로 시작되는, 1895년에 반포된 단발령입니다.
`짐이 발을 단하야 신민(臣民)에게 선(先)하노니 이유중(爾有衆)은 짐(朕)의 의(意)를 극례(克禮)하여 만국(萬國)으로 병립(竝立)하는 대업(大業)을 성(成)케 하라.....'
지금까지 단발령에 관한 우울하고도 집단무의식적인 추억 두 편이었습니다.
늘보<문화평론가>letitb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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