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대란]환자들 "정부도 의사도 문제"…韓方으로

  • 입력 2000년 8월 9일 19시 06분


9일 오후 3시경 서울 경희대한방병원 1층 내과 진료실 앞. 평소 150명 보다 50명 이상 많은 200여명의 환자가 진료를 기다리고 있었다. 병원측에선 이들 중 10% 정도가 최근까지 양방병원을 다니던 환자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의사들의 파업이 이제 정말 지긋지긋하다.” “왜 준비도 안된 의약분업을 실시해 국민을 고통스럽게 하는지 모르겠다.”

이들은 최근 의료계의 폐업 및 파업과 관련해 정부와 의료계를 함께 성토했다.

의료계의 계속되는 파업 및 폐업으로 지쳐 돌아선 환자의 발길이 한의원으로 향하고 있다.

대한한의사협회에는 최근 한방병원 및 한의원의 환자 수가 파업 이전보다 10∼20% 증가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보통 여름엔 환자 수가 20∼30% 주는데 비해 올해엔 양방의 파업 및 폐업의 영향으로 되레 늘고 있는 것. 특히 동네 한의원에 환자가 늘고 있다.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대추나무한의원엔 환자 수가 의료대란 전 하루 평균 15명에서 요즘 20명으로 늘었다. 이종한(李鍾翰)원장은 “다른 한의원도 비슷하며 요통 관절염 등 정형외과 환자와 소아과 산부인과 환자가 특히 많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회사원 최석훈(崔錫勳·33)씨는 고질적 장염으로 서울 문래동 회사 부근의 병원을 다니다가 지난달 병원 파업 때 헛걸음을 하고 나서 요즘 한의원에 다니고 있다. 최씨는 “이유야 어쨌든 의사가 환자를 등진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생각해 한방으로 바꿨다”면서 “한의원에선 수시로 전화로 병세를 물어보곤 한다”고 말했다.

최근까지 양방병원에 다니다 한방으로 바꾼 주부 유영숙(劉英淑·44)씨는 “제대로 준비안된 의약분업 때문에 병원과 약국을 헤매다 화가 나서 한의원에 다니게 됐다”고 말했다.

군병원과 보건소의 경우 동네의원의 폐업률이 20%대여서 아직은 폭풍전야. 그러나 11일부터 의사들의 전면재폐업이 이루어지면 6월 의료대란 때처럼 환자가 봇물을 이룰 것으로 보고 있다. 서울 마포보건소의 경우 평소 하루 300명의 환자가 오다가 지난 의료대란 때 1600여명이 몰렸다. 보건소 의약과 정지애(鄭知愛·41)과장은 “지금은 동네의원 대부분이 정상진료하고 있어 평소와 다를 바 없지만 11일부터 재폐업에 들어가면 보건소가 마비될 정도로 환자가 밀려올 것 ”이라고 전망했다. 국방부 보건과 최홍숙(崔洪塾·46)과장은 “빠른 시일 내에 의약분업 사태가 해결되지 않으면 밤낮으로 비상근무에 투입되는 군의관들이 지쳐 군인 환자 진료가 제대로 이뤄질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이성주·이호갑기자>stein3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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