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賞이 넘쳐난다…"선행賞후보 추천땐 칭찬賞"

  • 입력 2000년 7월 9일 18시 37분


서울 Y고교 2학년 이모군(17). 올 들어 학교에서 받은 학교장상만 영어경시대회상 과학독후감상 글짓기상 등 4개다. 이번 기말고사가 끝나면 과목별 최고 득점상을 7개 정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는 지난해에도 17개의 상을 받았다.

대학 입시에서 학교장 추천제와 특기 적성을 우대하는 특별전형이 확대되면서 일선 고교들이 ‘성적 부풀리기’에 이어 ‘상장 부풀리기’ 경쟁을 벌이고 있다.

특히 2002학년도 입시부터 서울대가 응시생 전원에게 학교장 추천서를 요구하고 면접 비중이 커지면서 일선 고교의 상장 남발은 더욱 심해지는 양상을 보인다. 종전에는 전과목의 성적을 종합해 우등상을 주었지만 이제는 과목마다 우등상을 주는 것은 물론 교내에서 각종 경시대회를 열어 상을 주는 등 상주기 경쟁을 벌이고 있다.

▽실태〓서울 K고교는 우등상을 2개 종류로 나누어 1, 2학년의 경우 과목별 최고 득점상과 종합 최고 득점상을 학기마다 주고 있다.

이 학교 L교장은 “제자들의 진학 문제를 고려해야 하고 학생들의 학력도 떨어지는 것같아 시험문제를 쉽게 출제할 수밖에 없다”며 “이 때문에 과목별 최고 득점자가 80명씩 나올 때도 있다”고 털어놓았다.

서울 M여고는 지난해부터 10개에 가까운 경시대회를 연다. 외부에서 자격증을 3개 이상 따오면 특별상도 준다.

또다른 서울 Y고교는 지난해부터 국어 영어 수학 과학 발명 논술 컴퓨터 자기주장발표 등 10여개의 경시대회를 열고 있다. 학교 밖에서 각종 경시대회에 참가해 상을 타오면 별도로 ‘공로상’까지 주기 때문에 ‘일석이조상’이란 말까지 생겼다.

▽문제점〓다양한 재능을 가진 학생들에게 상을 줌으로써 골고루 칭찬의 기회를 주기 위한 긍정적인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칭찬상’ ‘모범상’ ‘창의상’ 등 초등학교를 연상케 하는 상들이 고교에서 남발되고 목적이나 객관성이 불분명한 경우도 많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선행상 후보자를 추천한 학생에게 ‘칭찬상’을 주고 있는 서울 Y여고 김모교사는 “학생들이 서로 짜고 선행상 후보자를 추천해 선행상과 칭찬상을 나눠 타는 경우도 있다”며 “그러나 사실을 제대로 확인하기 어려워 웬만하면 인정해준다”고 말했다. S고교 K교사는 “대학 입시에 유리하게 작용하도록 ‘나눠먹기’식으로 상장을 준다는 사실을 학생들이 더 잘 알고 있는데 과연 교육적인 효과가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수준 떨어지는 賞 입시반영 안하기로▼

▽대학측 대응〓올해 입시부터는 상장의 권위 등을 평가해 수준이 떨어지는 상은 인정하지 않기로 하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섰다.

서강대 서준호(徐遵鎬)입학처장은 “지난해 대입전형을 분석한 결과 일선 고교에서 상장을 마구 주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며 “수상경력을 나열하는 것만으로 좋은 점수를 받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대 권두환(權斗煥)교무처장은 “전국 규모의 대회나 국제대회의 수상 경력을 제외하고 수준이나 객관성을 입증하기 어려운 대회 입상자나 교내에서 받은 상은 인정하지 않을 방침”이라고 말했다.

<이진영기자>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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