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력붕괴/왜 이 지경까지?]공부한다고 성공하나요?

  • 입력 2000년 7월 4일 18시 44분


“‘열린 교육’이 학력 붕괴를 가속화시키고 있다.”

지난달 29일 서울 도봉구 신방학중학교에서 열린 ‘학교 교육 어디로 가나’라는 주제의 토론회에서 교사와 학부모들은 ‘열린 교육’을 비판했다.

획일화된 주입식 교육과 시험지옥에서 벗어나 학업의 성취도에 맞춰 자율적으로 공부하면서 특기와 창의성을 기른다는 것이 ‘열린 교육’의 목표지만 전혀 잘못된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는 지적.

한 사회교사는 “열린 교육이 ‘아이들이 하자는 대로’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을’ 가르친다는 식으로 잘못 이해되고 학생들도 하기 싫은 공부는 하지 않아도 되는 것으로 인식하게 됐다”고 말했다. 한 학부모는 “열린 교육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나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한국교육개발원은 98년 초등학교에서 열린 교육을 받은 학생과 일반 교육을 받은 학생의 중학교 성적을 추적 조사했다. 이들의 성적은 중학교 입학시 별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열린 교육을 받은 학생의 성적이 일반 교육을 받은 학생에 비해 100점 만점에 5점 가량 뒤진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교육개발원 김양분(金良粉)박사는 “이는 열린 교육을 받은 학생이 중학교의 ‘주입식 교육’에 적응하지 못한 결과”라고 해석했다.

‘열린 교육’ 자체에 대한 논란은 별개로 하더라도 현재 교육이 뭔가 잘못됐다는 점에는 학부모 교사 전문가의 의견이 일치하고 있다. 90년대 중반부터 열린 교육을 표방한 교육개혁열풍이 불어닥치면서 초등학교에서는 각종 시험이 사라졌고 고교연합고사가 폐지되면서 중학생도 공부안하는 분위기에 젖어 들었다.

여기에 학생들의 입시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고교내신성적 절대평가제가 ‘성적부풀리기’를 위한 시험문제 쉽게 내기로 이어져 ‘쉬워진 시험→공부안하기→더욱 쉬워지는 시험’의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는 지적. 서울 S고 박모교사는 “2,3년전 학생들이 요즘 시험문제를 보면 너무 쉬워 코웃음을 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청소년개발원이 지난해 학생들이 수업을 듣지 않는 이유를 조사한 결과 1.8%가 ‘이미 아는 내용이어서’라고 대답했고 나머지 98.2%는 ‘지루하고 재미가 없어서’ ‘인생에 도움이 안돼서’ ‘분위기가 산만해서’ 등의 반응을 보였다.

대다수 학생들이 공부나 지적인 활동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학력 붕괴는 필연적인 귀결이다. 여기에는 ‘돈되는 정보만이 가치있는 정보’이며 ‘현실적이지 않은 학교공부’는 가치가 없는 것으로 매도하는 사회분위기도 한몫을 했다.

“베이비 복스가 공부 잘 해서 대학 갔나요? 노래 잘 하고 예뻐서 갔지. 요즘엔 공부한다고 성공하는 세상이 아니에요.” 서울 Y여고 2년생 김모양(18)의 말이다.

서울 C고 안모교사도 “한가지만 잘해도 대학을 갈 수 있다는 입시제도의 변화에 정말 한우물만 판 사람들의 성공담이 어우러져 지적인 가치를 숭상하는 분위기가 많이 퇴색했다”고 말했다.

서울 D고 박모교사(39)는 수업시간에 잠을 자는 학생들을 그냥 둔다. “깨우면 아이들이 떠들고 수업 시간에 이리 저리 돌아다녀 수업 분위기가 더 산만해진다”는 것이 박교사의 설명이다. 누적적인 학습 결손으로 수업을 들어봤자 모르고 재미도 없는 학생들이 그냥 방치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학생들을 지적인 활동으로 이끌 능력은 학교에도, 가정에도 없다. ‘요즘 애들이 공부를 못해서 걱정’이라는 어른들의 말에 학생들은 ‘재미도 없는걸 왜 배우냐’고 반문한다. 이들은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에 대해 학교와 부모는 막막할 뿐이다.

<이진영기자>ecolee@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