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입력 2000년 7월 1일 00시 34분
공유하기
글자크기 설정
과학지식은 객관적인가? 우리는 흔히 과학지식을 여타 지식과는 다른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진리라고 생각한다. 과학자는 땅 속에 묻혀 있는 보석을 캐내듯 자연 속에 숨겨져 있는 진리를 밝혀내는 사람이며, 이러한 과학활동은 사회와 무관하게 오로지 자연과의 커뮤니케이션을 통해서만 진행된다는 생각이 그동안 우리를 지배해왔다.
코페르니쿠스에서 뉴턴에 이르는 16, 17세기 과학혁명과 함께 시작된 이런 전통적 관점은 무려 300년 동안 지속돼 왔다. 그 과정에서 과학지식은 사회의 ‘바깥’에서 내적 논리에 의거해 자율적으로 행보하는 지식으로 간주되면서 날로 두터운 신비의 베일에 싸였다.
이러한 표준적 관점에 처음으로 본격적인 도전을 제기한 것은 1970년대 이후 영국 에든버러대의 데이비드 블루어, 배리 반즈, 도널드 매킨지 등에 의해 그 기초가 닦인 과학지식사회학(Sociology of Scientific Knowledge)이었다.
그리고 1976년에 초판이 발행된 이 책의 중심 내용인 ‘스트롱 프로그램(Strong Programme)’은 신비화된 과학지식을 탈신비화해서 과학지식을 사회학의 연구대상으로 삼는 과학지식사회학의 핵심적인 원리가 되었다.
스트롱 프로그램이 ‘강한’ 프로그램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동안 보편성과 객관성이라는 베일에 싸여 인식론적 특권을 누려왔던 과학지식의 내용 자체도 사회학적 분석의 대상으로 포함시켰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과학지식도 다른 지식들과 똑같이 사회 ‘속’에서 여러 사회 집단들의 이해관계와 가치체계와 충돌하면서 구성되는 지식이라는 것이다.
루어의 이 책은 이미 과학사회학, 과학사, 과학철학 등의 과학기술학 분야의 고전이 됐을 뿐만 아니라 인문과학과 자연과학을 아우르는 간학문적(Interdisciplinary) 접근을 시도하는 사람들이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필독서의 반열에 오른 명저다.
스트롱 프로그램에서 제시된 인과성 공평성 대칭성 성찰성의 4가지 명제는 오늘날 과학기술학에서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과학기술의 사회적 구성주의의 토대가 됐다.
특히 참-거짓 신념이나 성공-실패를 모두 같은 원인으로 설명해야 한다는 대칭성(Symmetry)의 원리는 그후 여러 방향으로 확장되면서 오늘날의 기술과 그 정책을 분석하는 중요한 도구인 기술의 사회적 구성론과 인간-비인간을 포괄하는 새로운 설명체계를 모색하는 행위자연결망이론(Actor-Network Theory)을 낳았다.
관련 분야의 연구자들 이외에도 이 책은 자신과 세계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모색하는 모든 이들에게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과학기술의 사회적 구성주의는 오늘날 그 어느때보다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는 과학지식이 만들어지는 현장(‘순수한’ 자연이나 사회 어느 한쪽이 아닌)을 밝히고, 그를 통해 과학기술에 대한 이해의 폭과 깊이를 더하려는 시도다.
그런 면에서 독자들이 과학지식사회학을 국내에 선구적으로 소개한 서강대 김경만교수(사회학)의 철저한 번역으로 이 책을 접할 수 있게 된 것은 무척 반가운 일이다. 369쪽, 1만8000원.
김동광(과학세대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