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대담/남북정상회담]김학준총장-한승주교수

  • 입력 2000년 6월 15일 19시 41분


《분단 반세기여만에 남북정상으로는 처음 평양에서 만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14일 역사적인 공동선언문에 서명했다. 두 정상의 합의는 한반도는 물론 동북아정세에도 지각변동을 예고하고 있다. 동아일보사는 15일 21세기 평화재단 이사인 고려대 한승주교수와 인천대 김학준 총장의 대담을 마련, 공동선언에 담긴 의미와 향후과제 등을 살펴봤다.》

▽김총장〓무엇보다 두 정상이 회담을 통해 공동선언문까지 합의한 것은 큰 진전이다. 또 이번 회담을 통해 김정일위원장은 국제사회에 화려하게 등장했다. 이는 남북관계 진전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두 정상이 5개항에 합의한 뒤 활짝 웃는 모습이 TV와 신문에 나간 것 자체가 7000만 민족 모두의 마음을 열어줬다. 또 공동선언문에 포함된 이산가족 재회는 많은 기대를 낳게 한다.

▽한교수〓결론적으로 아주 잘된 회담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그림’이 좋았다. 우리측의 노력도 있었지만 ‘그림’은 사실 김정일위원장의 작품이다. 김위원장은 나름대로 치밀한 계산을 가지고 중요한 결단 끝에 이 같은 ‘그림’을 내놓았다고 본다. 우리는 회담이 보여주는 것에 따라 흥분만 하기보다는 그 배경과 동기에 대해 깊이 생각해 봐야 한다. 김위원장은 내부적으로는 자신이 남한의 대통령과 통일문제를 논의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통일문제와 관련해 부족했던 자신의 이미지를 보충하는 효과를 노렸을 것이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계기는 남한 사람들에게 자신이 굉장히 합리적이고 평화적인 사람이라는 점을 과시하고 싶다는 점일까 싶다. 그러나 이것을 두고 김위원장이 갑자기 평화애호주의자로 변해 곧 평화와 통일이 오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무리라고 본다. 중요한 것은 실천이다.

▽김총장〓적절한 지적이다. 공동선언문 내용은 과거에도 남북 사이에 비슷하게 합의되고 발표됐었다. 7·4공동성명만 해도 통일의 3대 원칙뿐만 아니라 남북조절위라는 기구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문서로만 끝났다. 남북기본합의서도 마찬가지다. 다만 이번 성명은 남북정상이 발표한 것이라는 점에서 무게를 갖고 있다. 5개 항목 중 가장 주목되는 부분은 2번째 항이다. 남쪽이 제의해온 국가연합제안과 북측이 제기해온 연방제 사이에 공통점이 있다는 점을 인정한 것은 통일까지는 과도기가 필요하다는 점을 서로 인정한 것이다. 통일과정의 ‘장기성(長期性)’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그러나 이제 남은 것은 실천이다. 과거에도 많은 합의가 있었지만 실천이 따르지 않고 오히려 긴장만 조성되는 일이 많았다.

▽한교수〓사실 연합제와 연방제 방안은 진정한 통일을 조금 뒤로 미뤄놓자는 것이다. 한편 북한은 지금까지 체제유지를 위해 남한과는 적대관계를, 내부적으로는 폐쇄성을 유지해왔다. 그런데 노동신문에 김대통령 사진을 커다랗게 내놓고, 방송에서도 정상회담에 대해 대대적인 보도를 해놓고 현 체제를 그대로 유지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김위원장으로서는 큰 도박을 한 셈이다. 본인은 승산이 있다고 판단해 도박을 했겠지만 사회현상과 정치현상은 행위자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움직이는 경우가 많다. 그 결과를 지켜볼 일이다. 이번 회담만을 놓고 보면 김위원장은 폐쇄성은 계속 유지하겠지만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북한을 끌고 갈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공동선언문의 경우 정상들이 구체적인 부문까지 다룰 수 없겠지만 추상적인 표현으로 이뤄지는 등 구체성이 적다는 느낌이다. 이산가족문제도 규모는 어떻게 할지 등 아무 것도 정해지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앞으로 경협 분야에서의 협상결과에 따라 구체적인 사항을 결정하겠다는 뜻으로도 받아들여진다.

▽김총장〓관심사 중 하나는 김위원장의 답방이다. 한교수 지적처럼 공동선언문에는 구체적인 사안들이 적시돼 있지 않은데, 김위원장의 서울 답방 때 남쪽에 ‘선물’로 주려는 전략에 따라 남겨놓은 것이 아니냐는 생각도 든다. 정상회담 진행과정을 보면 김위원장 또는 북측이 치밀하게 준비해 회담이 북한에 의해 주도되는 것처럼 보여졌다. 회담 연기도 그러한 전략의 산물일 것이다. 한편 일부 언론에 서울과 평양에 상주대표부를 교환 설치하는 문제가 논의됐다는 보도가 있었으나 합의문에서는 언급되지 않아 아쉽다.

▽한교수〓문제는 답방의 시기가 언급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적절한 시기’라는 표현은 경제협력 등 다른 부분에서 협상결과를 본 뒤 결정하겠다는 뜻이 아닌가 한다. 이를 확실한 약속으로 볼 수 없다. 답방 문제는 우리 쪽이 상당히 원했던 문제인데 너무 큰 기대를 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구체적인 조치들까지 정상회담에서 발표될 필요는 없다. 김위원장의 서울 방문 이전이라도 대표부설치 면회소설치 등을 얼마든지 합의할 수 있는데 북한은 매 건마다 대가를 요구할 것으로 생각한다. 한편으로는 뭔가를 주고받을 수 있는 틀이 마련됐다는 점이 다행이기도 하다. 과거에는 뭔가를 주고받고 싶어도 어려웠다.

▽김총장〓우리로서도 남북정상회담이 끝난 만큼 사흘 동안의 흥분과 감격에서 벗어나 냉철하게 따질 것은 따져야 한다고 본다. 김대통령 자신도 평양에 도착해서 ‘가슴은 뜨겁게, 머리는 냉철하게’라고 말했는데 이것이 남북관계를 바라보는 기본 자세가 돼야 한다.

▽한교수〓흥분과 감격은 김위원장이 준 것이다. 왜 그랬는지 차분히 생각해봐야 한다. 김대통령이 평양에 가서 아주 처신을 잘했다고 생각한다.

▽김총장〓김대통령이 원래 말하기를 좋아하고 잘하는 분인데, 이번에 평양에서는 말을 아끼는 등 원로다운 면모를 보여줬다는 느낌도 받았다.

▽한교수〓김위원장이 김대통령을 대하는 게 아버지에게 어리광을 떠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자연스러운 것인지 계산된 것인지 모르겠지만….

▽김총장〓국민이 혼란스럽다는 말을 많이 한다. 김위원장의 모습도 그렇다는 반응이 많다. 특히 선생님들이 아이들에게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고민일 것이다. 국가보안법 개폐 논쟁이 다시 일어날 수 있을 것이다.

▽한교수〓사실 정상회담에서 나타난 김정일의 모습은 이전 이미지와는 다르다. 여기에는 북한이 연출하고, 보여주고 싶은 것만을 보여줬기 때문이라는 측면도 작용했다. 한편으로는 정상회담 분위기를 깨고 싶지 않기 때문에 북한인권문제 등에 대해 할말이 많지만 자제한 측면도 있다. 그러나 정상회담을 했다고 해서 북한 상황이 달라진 것도 아니다. 과거에는 북한을 찬양하면 안됐는데 지금은 거꾸로 비판하면 안 되는 분위기가 됐다. 균형을 찾는 게 필요하다. 과거 북한에 대해 너무 부정적인 선입견을 가져왔다면 지금은 그 반대편으로 갔다는 느낌이다.

▽김총장〓국제사회로 시야를 돌려 보면 한반도 주변의 4강은 이번 회담을 환영한다는 뜻을 밝혔다. 그렇지만 이들의 속마음은 다를 수 있다. 특히 미국은 남측이 북한 핵과 미사일문제를 거론하기를 바랐는데 이 부분에 대한 설명이 전혀 없어서 우리쪽으로부터 설명을 듣고자 할 것이다.

▽한교수〓외교적으로 제일 이득을 본 나라는 중국일 것이다. 그동안 남북관계 대화는 주로 미국이 주도했는데 이제 무대 중앙에 중국이 들어선 셈이 됐다. 김위원장이 회담 전에 중국을 방문하는 등 중국이 북한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미국 입장에서 지금 전개되는 정상회담은 영어로 표현하면 ‘복잡다기한 축복(mixed blessing)’이다. 일단 한반도에서 무력분쟁의 가능성이 줄어든다면 환영할 일이다. 회담이 북한의 연착륙에 도움이 된다면 미국으로서 나쁠 게 없다. 그러나 미국 입장에서는 북한 핵과 미사일문제가 사라지지 않은 상황에서 여기에 대한 경계심이 없어진다면 부담감이 클 것이다. 또 북한 미사일의 위협을 들어 미국 본토 방어를 위한 국가미사일방어체제(NMD)라든지, 전역미사일방어체제(TMD) 구축을 추진해온 미국으로서는 명분이 약해진다.

3만7000명의 병력을 한국에 주둔시키고 있는 미국으로서는 군사문제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미국은 일단 현재의 병력을 유지하고 싶지만 최근 전략적으로 미군을 계속 주둔시켜야 하느냐는 논의가 부분적으로나마 일어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이 문제는 회담 이후 남한의 분위기에 따라 상승작용할 가능성도 있다.

우리로서는 핵과 미사일과 관련해 북한과 협상할 위치에 있지 않지만 측면에서 지원해줘야 할 입장이다. 정상회담에서 직간접적으로 북한에 핵과 미사일문제의 진전이 남북 경협 등의 문제와 직결됐다는 메시지가 전달됐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본의 경우 북한경제의 재건을 위해서는 상당한 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에 회담을 참고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다. 일본은 한반도 문제에 참여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고, 요즘은 이 같은 의도를 드러내놓고 나타내고 있다. 일본과 러시아는 기본적으로 ‘한반도문제의 한반도화’를 환영한다. 그러나 한반도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제적인 협상과 회의가 필요하다.

▽김총장〓한반도 전체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이 이번 회담을 계기로 커지리라고 전망된다. 정상회담 이전에 김위원장의 방중 및 중국 장쩌민(江澤民)주석과의 회담은 중국의 영향력 증대를 예고한 것이다. 또 앞으로 일본과 북한 사이에 수교협상도 본격화되는 만큼 우리는 감격과 흥분에서 벗어나 손익계산을 정확히 하는 한편 주변 국가와의 문제까지 고려해야 한다.

특히 미국과의 전통적인 우호 친선 관계가 흔들리지 않도록 세심하게 배려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주변 열강이 남북정상회담의 진전을 돕도록 명분론과 현실론에 입각해 꾸준히 설득해야 한다.

▽한교수〓김위원장의 방중은 결국 북한의 부분개방으로 체제가 위험해질 가능성에 대비해 중국의 지원과 보장을 확인하기 위한 것으로 보여진다. 중국으로서는 남북관계가 활성화되고, 국제적인 지원이 많아져 중국측의 부담이 적어지고, 다른 한편으로는 북한체제 존속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에 환영한다. 한편 지금은 강대국들이 북한과의 관계에 있어 경쟁구도에 들어가는 형국이다. 언뜻 19세기말과 상황이 비슷하지만 우리가 크게 우려할 필요는 없다. 다만 우리로서는 ‘영상’과 ‘현실’을 구별할 수 있어야 한다. 새 친구를 만들면서 과거 동맹자를 유지할 수 있는 정책적 지혜 또한 필요하다.

<정리〓공종식·부형권기자>kong@donga.com

▼김학준총장 약력=△미국 피츠버그대 정치학박사 △서울대교수 국회의원 청와대대변인 뮌헨대객원교수 △현 동아일보 편집논설고문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회장 한국정치학회장

▼한승주교수 약력=△미국 US버클리대 정치학박사 △외무부장관 뉴욕시립대부교수 스탠퍼드대교환교수 △현 고려대교수 아태안보협력이사회 공동의장,유네스코 석좌교수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