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삐풀린 고액과외]"한과목 月150만원 기본"

  • 입력 2000년 5월 30일 20시 19분


J씨(47·서울 송파구 문정동)는 최근 고교 2년생 딸의 과외 교사를 구하려다 무안을 당했다. 그는 학교 교사로부터 딸이 수학 성적만 조금 오르면 명문대 진학도 가능하겠다는 말을 듣고 수소문 끝에 간신히 유명 학원의 수학 강사를 만났다. J씨가 “월 80만원 정도면 되겠느냐”고 하자 그 강사는 표정을 바꾸면서 “물정을 모르시는군요. 최소한 ‘두 장(200만원)’입니다”라며 자리를 떴다. 그는 딸의 개인 과외를 포기했다.

서울 모 학원에 고교 3년생인 아들에게 물리 화학 생물 지구과학 등 4과목을 가르칠 강사를 찾는다는 한 학부모의 전화가 걸려 왔다. 학원측 상담자가 “학원에서 국 영 수 등 기초 과목을 공부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하자 이 학부모는 “국 영 수는 이미 과목당 200만원짜리 강사가 가르치고 있다”고 말했다. 과학 4과목까지 과외를 하면 과외비가 월 1000만원을 훨씬 넘지만 돈은 별문제가 아니라는 태도였다.

헌법재판소의 과외 금지 위헌 판결 이후 학원 강사의 고액 과외가 고개를 들고 있다. 특히 서울 강남 지역에서는 여름 방학을 앞두고 유명 강사를 ‘예약’하려는 학부모들이 늘어나고 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쉽게 출제되면서 과외 수요는 전반적으로 줄어드는 추세지만 일부 계층의 고액 과외는 늘고 있다.

학원을 운영하는 K씨(38)는 과외비가 크게 올랐다는 것을 실감했다. 그는 한 강사에게 주중 전임강사를 하는 조건으로 월 400만원을 제시했지만 퇴짜를 맞았다. 이 강사는 고교 3년생 4명에게 일주일에 두시간씩 이틀간 수학을 가르치고 한 명에게 150만원을 받는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에선 유명 강사를 구하려면 과목당 100만∼150만원은 보통이고 ‘족집게’ 강사는 1000만원을 넘는다. 영어보다 수학이 점수에 미치는 영향이 커져 수학 강사가 ‘귀하신 몸’이 됐다.

수도권 학원 강사는 월 60만∼80만원을 받으며 때에 따라 학부모와 ‘가격 흥정’을 하기도 하지만 강남에서는 부르는 게 값. 한 학원 관계자는 “월 1000만원 이상을 과외비로 쓸 수 있는 학부모 100명을 모을 수 있는 강사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강남에는 ‘새끼 강사’를 두고 소규모 그룹 과외를 전문적으로 하는 ‘보따리 장수’들이 성업 중이다. 12∼15명씩 가르치며 한 과목에 1인당 30만원 안팎을 받는다. 이들은 입소문을 통해 과외 수요자를 만나지만 생활정보지 등을 통해 공개 모집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학원 관계자들은 “유명한 강사라는 점 때문에 고액 과외를 마다하지 않는 경향이 있으나 실력에 맞게 꾸준히 공부하는 게 더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한편 한국직능단체총연합회(회장 문상주·文尙柱)는 30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세종문화회관에서 문용린(文龍鱗)교육부장관과 한국학원총연합회 등 200여 단체의 학부모 학원장 45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고액과외추방 범시민연대’ 결성식을 갖고 고액 과외 추방에 앞장설 것을 다짐했다.

범시민연대는 이날 “상대적 박탈감과 계층간 위화감을 조성하는 고액 과외를 시민 학부모가 감시자가 되어 추방하겠다”고 결의했다.

<이인철기자> inchu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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