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아 피천득선생 15일 '9순잔치'…제자 가족 200여명 참가

  • 입력 2000년 5월 15일 19시 4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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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에 현직으로 있는 제자들이 자주 찾아와요. 가까우니까. 영문학뿐만 아니라 여러 과에 많지. 이 사람들이 잔치를 열자고 ‘모의’를 한 거죠. 내게 복이 있다면 제자복이지, 뭐 있겠어요?”

수필집 ‘산호와 진주’ ‘인연’ 등을 통해 일상의 소박한 정감을 섬세한 필치로 담아내면서 수필을 문인들의 ‘여기(餘技)’ 아닌 독자적 문학장르로 발전시킨 금아 피천득(琴兒 皮千得) 선생. 한국 수필문학의 상징으로 추앙받는 그가 스승의 날인 15일 저녁 서울 신라호텔에서 구순 기념 파티를 가졌다.

1930년 월간 ‘신동아’를 통해 등단한 지 70년. 아직도 문예지에 종종 시를 발표하는 ‘최장수 문인’의 문학인생을 기리는 의미도 곁들여졌다.

그의 생일은 5월29일이지만, 스승의 날이 갖는 의미를 담아 15일로 당겨졌다. 파티에는 제자와 가족 등 200여명이 모였다. 그를 끔찍이 ‘존경하면서도 사랑하는’ 작가 박완서 최인호 조정래 김초혜 이해인수녀 등 문단의 후배들과 김재순(金在淳)전국회의장도 자리를 같이했다.

9순의 선생은 첫돌 상을 받은 어린아이처럼 해맑은 미소로 이들을 맞았다. 캐나다에 살고 있는 아들 세영(60)이 먼길을 달려와 손님을 맞았다. 선생이 ‘하나님이 내게 준 선물’이라고 할 정도로 사랑하고 있는 외동딸 서영이 아들의 중학교 입학 관계로 함께 자리를 하지 못한 것이 유일한 아쉬움이었다.

잔치에 앞서 서울 반포본동 자택으로 선생을 찾았다. 응접실에서 기자를 맞은 것은 제자 김우창(고려대 영문과) 한병주 윤정구 교수(서울대 의대) 등 지인들이 보내온 여섯 개의 화분. 그리고 벽에 걸지 않은 채 기대놓은 액자들이었다. “옆집에서 시끄러워할까 봐 못을 박지 않는다”고 선생은 말했다. 글에서 느껴지는 온후한 인품 그대로였다. ‘수필은 청자 연적이다…’라고 대표작 ‘수필’에서 그는 읊었지만 집에 연적이나 다른 호사스러운 물건은 보이지 않았다.

미소와 함께 기자를 맞은 선생은 동아일보와의 남다른 인연을 떠올렸다.

“춘원 이광수가 편집국장으로 있을 때 당시 경성고보 다니던 나를 집에 들였어요. 부모님이 돌아가신데다 문재(文才)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말야. 전화가 내 방에 있었는데, 밤마다 기자들이 전화로 국장을 찾곤 했지. 검열에 걸려서 총독부가 윤전기를 세우라고 한다고 말야….”

스승의 날을 맞아 시대의 ‘스승’인 그가 세상에 당부하고픈 말을 부탁해 보았다. 잠시 눈을 감았다 담담히 읊조리듯한 그의 말은 수첩에 옮겨 적는 그대로 한 편의 ‘수필’이 된다. 의고체나 번역문체가 보이지 않는 젊은 날의 정갈한 글발 그대로였다.

“사람이 욕심을 갖지 않고 살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다음 두 가지는 기억해야 해요. 욕심 때문에 자존심을 꺾고 부정한 길을 가면 안됩니다. 또 남의 불행 위에 자신의 행복이 서서는 안됩니다.”

“좋은 그림을 꼭 소유해야 행복한 것은 아닙니다. 기억 속에 넣어놓으면 되는 겁니다. 파리의 개선문을 나폴레옹이 세웠습니다. 지금 그것이 누구의 것입니까? 그 곁을 거니는 연인들의 것입니다. 좋은 기억을 많이 가진 사람이 부자입니다. 좋은 기억은 욕심 가지고 살 수 없습니다.” 70년대 중반 “더 이상 좋은 작품을 쓸 수 없을 것 같다”며 수필 집필을 중단한 선생은 그의 삶을 통해 수필의 세계를 실현해 나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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