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지역따라 좋아하는 향 달라요"

  • 입력 2000년 3월 9일 19시 47분


㈜태평양 박동범대리(33)는 유난히 넓고 견실한 콧방울을 가졌다. 동료들은 “냄새를 맡는데 탁월한 신체조건”이라고 평가한다.

그는 향수의 제조 유통 판매를 총괄하는 브랜드 매니저. 박씨가 조향사 시절이었던 지난해 내놓은 향수 ‘헤라 지일(Hera Zeal)’은 16만개(64억원어치)가 팔려나가 국내 고급향수시장에서 판매량 1위를 기록했다. 연간 1000억원 규모인 국내 향수시장의 3%를 차지하는 양.

그는 화학도였던 대학 시절 서로 다른 향수를 배합한 독특한 향수를 만들어 여자친구에게 선물하기를 즐겼고, 더 아름다운 향을 선사하기 위해 고민을 거듭한 끝에 조향사가 되기로 결심했었다.

-남자들이 여자에게서 맡기를 원하는 향과 여자들이 스스로에게 뿌리길 원하는 향과는 차이가 있는지.

“남자들은 아기 분(베이비 파우더) 냄새인 스위트 파우더리 향을 절대적으로 선호합니다. 마치 긴머리 여성을 동경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본능에 가까운 것이지요. 반면 여성들은 산뜻하고 후레쉬한 향을 선호합니다.”

한국 여성들이 좋아하는 향은 꽃을 재료로 한 플로럴 계열과 머스크 향. 쿨워터, 휴고 우먼, 구찌 엔비, 타미 걸, 불가리, 에스띠로더 플레저 등 제품이 여기에 속한다. 버버리 제품에서 풍기는 따뜻하면서 달콤한 스위트 바닐라 계열도 많이 찾는다.

박씨가 한 소비자 조사에 따르면 플로럴 계열은 국내 전 지역에서 고르게 선호됨에 반하여 달콤한 바닐라 향은 유독 대구지역에서 강하게 찾는 것으로 나타나 정치 뿐 아니라 좋아하는 향기에도 지역색이 발견되고 있다.

-계절에 따라 각광받는 향이 다른지.

“과거 여름에는 시원하면서 짭조롬한 바다내음(후레쉬 머린)이 나는 향이, 겨울에는 약간 징그러우면서 따뜻한 향이 선호되기도 했으나 요즘은 실내생활이 늘어남에 따라 계절차가 줄었습니다. 후레쉬한 향이 강세이지요.”

-여성들이 향수를 선택할 때 어떤 것에 영향을 받는지.

“국내에선 향 자체 보다는 병의 모양이나 브랜드가 소비자의 선택을 절반 이상 좌우합니다. 그래서 향수제작 초기단계에서부터 국내 업체들은 내용물과 용기 모양에 똑같은 비중을 두고 연구 개발합니다.” 미국과 유럽의 경우 향수병 모양은 사각 또는 원형의 단순한 디자인 또는 병 속에 인형을 집어넣는 등의 실험적인 디자인으로 대별. 반면 국내 향수 업체들은 병에서 예술적인 느낌이 흐르도록 하거나 브랜드 또는 로고를 커다랗게 붙여놓는 쪽에 주안점을 두어 디자인한다. 향수를 기호품 보다는 소장가치가 있는 ‘준(準) 보석’으로 여기는 국내 소비자들의 성향을 감안한 것.

-향수를 구입할 때 주의할 점은.

“지구력이 필요합니다. 바로 결정하지 말고 뿌려본 후 각기 10분, 30분이 경과한 뒤 다시 맡아봐야 합니다. 시간이 지나면 사람마다 독특한 체취와 향수가 결합돼 고유한 냄새를 만들어 냅니다. 이를 맡아보면 자신에게 적절한 향인지 여부를 정확히 판별할 수 있습니다.”

최근에는 남성의 향수를 사용하는 여성들이 늘고 있다. 장 폴 고티에의 르말이 대표적. 이는 향취 속에 있는 엠버 향이 동물적인 냄새를 풍기며 강인한 느낌을 내 진취적인 이미지를 풍길 수 있기 때문. 엠버 향은 사향 고래의 냄새를 합성원료로 재현한 것이다.

박씨 박씨는 “어려서부터 치열이 고르지 못해 웃음을 참는 버릇이 있었다”며 “향수 냄새를 맡고 있노라면 입을 늘 다물게 돼 직업선택을 탁월하게 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인터뷰 도중 기자가 시슬리 향수를 사용한다는 사실을 정확히 알아 맞췄다.

▼대표적인 향의 계열과 그에 속하는 향수▼

①플로럴(floral)〓장미 자스민 라일락 카네이션 히아신스 바이올렛 등 꽃을 재료로. 랑방의 아르페주, 에르메스의 아마존 등.

②우디(woody)〓나무를 연상시키는 신선한 향. 따뜻하고 부드러운 분위기. 겐조 뿌르 옴므, 오마 샤리프 등.

③시프레(chypre)〓지중해의 키프로스 섬의 이미지를 따 코티 사가 ‘시프레’라는 향수를 1917년 발표하면서 유래. 떡갈나무에 서식하는 이끼인 오크모스 오렌지 장미 등 식물성 향과 동물성 향이 조화를 이룬다. 성숙한 여성미. 미츠고, 아라미스, 폴로, 구찌 노빌레 등.

④시트러스(citrus)〓레몬 오렌지 라임 자몽 등이 재료. 상큼하지만 휘발성이 강해 지속시간이 짧다. 겔랑의 오 드 콜로뉴 임페리얼, 오 드 콜로뉴 에르메스 등.

⑤그린(green)〓풀잎과 나뭇잎의 풋내와 같은 향. 바이올렛 잎에서 추출한 정유 등이 원료. 디낭의 방베르, 샤넬 No19, 겐조 데떼, 오드 구찌 등.

⑥푸제아(fougere)〓라벤더 타입으로 불리기도. 라벤더 오크모스 등을 재료로 장미 등 꽃향기와 샌들우드 등의 우디 향을 가한 후 향이 변하지 않도록 보류제를 넣는다. 남성 향수에 많다. 폴로, 투스카니 뿌르 옴므 등.

⑦오리엔탈(oriental)〓사향 용연향 등 동물성 향료가 많이 배합된 위에 바닐라 계 향, 우디 향 등이 조화를 이룬다. 동양의 신비롭고 에로틱한 이미지. 지속성이 풍부해 많이 뿌리면 불쾌감을 줄 수 있다. 쁘아종, 코코 샤넬, 지노 다비도프, 판타지움, 카샤야 드 겐조 등.

⑧알데히드(aldehyde)〓플로럴 향을 기초로 탄소 수소 산소 등 알데히드를 더한 것. 강렬하며 확산효과가 뛰어나 향수 산업 발전에 기여. 샤넬 No5, 마담 로샤스, 화이트 린넨 등.

‘향, 향수이야기’(도서출판 한송)

<이승재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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