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수학이 나를 불렀다'/印 천재수학자의 삶

  • 입력 2000년 2월 25일 19시 33분


▼'수학이 나를 불렀다' 로버트 카니겔 지음/사이언스 북스/ 김인수 전남대교수 옮김/ 406쪽/ 1만3000원▼

이 책의 원제는 ‘The Man Who Knew Infinity’. 우리말로는 ‘무한(無限)을 알았던 사람’이다.

그 주인공인 인도의 천재 수학자 스리니바사 라마누잔(1887∼1920)은 신(神)과 0과 무한 속에서 살다가 서른셋의 나이로 짧은 생을 마감한 사람이다. 그는 식민지 인도 브라만의 가난한 아들로 태어나, 수학 하나로 영국과 세계를 정복한 천재 수학자였다.

세계 수학사에서 3대 천재로 불릴 만큼 그의 업적은 눈부시다. 특히 수의 분할 이론이나 정수론이 그렇다. 지금도 플라스틱 중합체나 암 연구, 소립자 물리학, 통계 역학, 컴퓨터 과학, 암호 해독학, 우주 과학 등에 널리 이용되고 있을 정도다.

원제에 나오는 ‘무한’이라는 단어에서 드러나듯 그는 보통의 수학자와 달랐다. 끝이 없는 수의 세계, 그 무한에 대한 직관이 번득였던 수학자였다.

이 책은 낭만과 비극으로 가득찬 라마누잔의 짧은 삶을 그린 전기다. 그는 어려서부터 명상적이고 직관적이었다. 그리고 늘 수학만 생각했다. 수학 실력은 탁월했지만 다른 과목은 모두 낙제였다. 제도권 교육과의 갈등, 가난으로 인한 고뇌, 가출로 얼룩진 10대 시절. 그러면서도 수학의 끈을 놓지 않았다. 하지만 인도에서 그가 더 이상 배울 것은 없었고 그를 평가해줄 사람도 없었다.

그래서 그는 당시 세계적인 수학자였던 영국의 아이작 하디에게 도움을 청했다. 하디는 라마누잔의 수학노트를 보고 거기 숨어있는 경이와 신비에 찬탄을 금치 못했다. 하디의 인정을 받은 라마누잔은 드디어 1914년 케임브리지대 트리니티컬리지 연구원으로 떠났다.

새 인생이었다. 행복했다. 그러나 그는 역시 식민지인이었다. 인도인에 대한 영국인의 차별, 그로 인해 트리니티의 연구원직에 오르지 못했고…. 라마누잔은 우울해졌다. 게다가 고민 과로 영양부족 등으로 폐결핵에 걸렸다. 달리는 열차에 뛰어들어 자살을 기도하기도 했다. 다행히 목숨은 건졌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끝내 요절하고 만 불운한 천재였다.

그의 삶은 비극적이어서 오히려 아름다움과 감동으로 다가온다. 수학에 관한 전문적인 이야기가 책 중간 중간에 나오지만 그것이 책읽기의 즐거움을 방해하지는 않는다.

가장 매력적인 대목은 라마누잔의 동양적 직관에 관한 내용. 이전의 수학사나 수학의 발전 과정을 전혀 모르고서도 탁월한 업적을 이뤄낸 그의 직관이 읽는 이를 놀라게 한다.

라마누잔의 연구 분야는 일반적인 수나 방정식이 아니라 무한히 크거나 무한히 작은 영역에 관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무한에 관한 집념과 놀라운 직관력으로, 상상하기 어려운 여러 정리를 만들어냈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철저한 논리와 깔끔한 증명을 중시하는 서구 수학의 전통 속에서 동양적인 직관으로 수학을 눈부시게 발전시킨 라마누잔의 신비로움. 그 긴장이 이 책의 흥미를 더해준다. 저자는 미국의 교양과학 저술가. 김인수 전남대 교수(수학교육) 옮김. 406쪽, 1만3000원.

<이광표기자>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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