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자금 초단기로 몰린다…금융시장 불안영향

  • 입력 2000년 1월 26일 19시 08분


주가 급등락과 대우채 환매에 대한 불안감 등이 연초 금융시장을 짓누르면서 시중자금이 만기 3개월 미만의 초단기 상품으로 몰리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시중자금의 단기부동화가 외환위기 이후에는 새삼스러운 현상이 아니지만 최근의 자금이동 속도나 규모는 대우사태 발생 직후인 작년 8, 9월과 비슷한 양상이라는 게 금융계의 분석.

전문가들은 “자금의 단기화가 지속되면 금융기관의 안정적인 자금운용을 저해해 기업이 설비투자 등에 필요한 장기자금을 조달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된다”고 지적했다.

▽돈 어디로 몰리나〓26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들어 21일까지 은행 투신 종금의 단기 금융상품에는 10조원 이상 몰렸다. 투신권의 대표적인 초단기 상품인 머니마켓펀드(MMF)는 4조2000여억원을 유치했고 아무 때나 돈을 찾거나 넣을 수 있는 은행의 시장금리부 수시입출식 예금(MMDA)도 2조1950억원 늘었다.

종금사 발행어음은 나라종금의 영업정지에도 불구하고 고액 전주가 꾸준히 몰려 동양 등 우량종금사를 중심으로 7600억원의 증가세를 유지했다.

이 기간 중 은행 저축성예금 증가액 11조9000억원중 단기상품의 수신액까지 감안하면 총 증가규모는 10조원을 훨씬 웃돈다는 분석.

채권 딜러들은 “장기금리가 연 10%대 중반으로 치솟던 올해 초 유독 3개월짜리 기업어음(CP)과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가 꾸준히 하락세를 이어간 것도 단기상품에 대한 인기를 반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중도에 되찾을 경우 환매수수료를 내야 하는 투신의 장기 공사채형 수익증권은 2조1000여억원이나 빠졌고 특정금전신탁을 제외하고는 은행 신탁상품도 약세를 면치 못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최근 금리를 소폭 올린 정기예금도 일부 거액 예금자들은 만기 3개월이나 6개월을 선호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대우채 환매가 고비〓시중자금의 단기화를 부추긴 가장 큰 이유는 현재 시장상황이 극도로 불투명하기 때문. 이와 함께 작년말 부채비율을 낮추기 위해 은행 대출을 갚았던 기업들이 올해 초 돈을 되돌려 받았지만 마땅히 굴리거나 투자할 곳을 찾지 못한 것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한은 관계자는 “주가와 금리가 어떻게 움직일지 확신을 갖지 못한 자금 운용자들이 우선 단기로 예치해 ‘기동성’을 확보하는 전략을 취하면서 생겨난 현상”이라며 “이 돈이 어느 쪽으로 이동할지는 다음달 8일의 대우채 환매 결과에 따라 결정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지난해 말 현재 만기 1년 미만의 단기금융자산 규모는 271조원으로 2년 사이에 100조원 가량 증가한 상태. 전문가들은 이 같은 대기성 자금이 주식시장을 거쳐 부동산 등 자산시장으로 흘러갈 경우 우리경제의 안정기반을 뒤흔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박원재기자>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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