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魂 한국의 힘]'한국적 가치'가 국제경쟁력

  • 입력 1999년 12월 31일 21시 19분


《한국인에게 21세기의 새 아침은 ‘희망의 아침’ ‘가능성의 아침’일 수 있는가. 우리는 감히 “그렇다”고 자답하고자 한다. 비록 우리가 처한 현실의 한편이 멸렬하다 해도 조금만 눈을 돌려 돌아보면 ‘희망의 메시지’를 웅변으로 전해주는 동시대 한국인들이 얼마든지 있는 까닭이다.‘정(淨)한 실력’ 이외에 그 무엇도 허락하지 않는 세계무대의 경쟁에서 우뚝 선 한국인들. 그들이 발현해 낸 경쟁력 있는 한국적 가치, 한국적 문화, 한국적 특장(特長)을 살펴보면서 우리는 용솟음치는 희망을 느낄 수 있지 않은가.》

발레리나 강수진의 별명은 ‘연습벌레’다. 하루에 19시간씩 춤을 춘 적도 있다. 오죽했으면 한 시즌에 토 슈즈 150여켤레가 해졌을까. 미국 벤처기업으로 명성을 얻은 김종훈도 ‘일벌레’다. 주 120시간씩 일을 했다. 상담하다가 그만 상대 앞에서 그대로 잠에 곯아떨어지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백남준은 열여덟에, 이우환은 서울대 미대 1학년 때 일본으로 ‘뛰었다’. 강수진은 선화예고 1학년 때 모나코왕립 발레학교로, 정명훈은 열세살 때 미국 음악학교로 유학갔다. 박세리는 열아홉에 골프채 하나 달랑 메고 미국 골프계에 뛰어들었다.

박세리에겐 담력을 키운다고 한밤중 공동묘지에서 골프를 가르친 극성 아버지 박준철씨가 있다. 고흥주의 어머니 전혜성씨는 그 자신 보스턴대 사회학 인류학 박사. 그는 6남매를 모두 하버드 예일 등 명문대 박사로 키워냈다. 그뿐인가. 고흥주의 아버지 고광림씨는 5·16 군사쿠테타가 일어나자 미련없이 주미공사직을 집어 던지고 평생 이국땅에서 망명객으로 살다 갔다.

그렇다. 세계무대에서 역경을 딛고 입신한 사람에겐 닮은 점이 많다. 보통사람들로선 상상조차 힘든 피나는 노력을 했고 일찌감치 세계를 향해 눈을 떴다. 그리고 그들 뒤엔 어김없이 훌륭한 부모가 있었다.

그러나 이 정도의 여건을 갖춘 사람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렇다면 한치의 허점도 용인하지 않는 국제경쟁력의 무대에서 이들을 ‘대가(大家)’로 키워낸 ‘그 무엇’, ‘플러스 알파’는 과연 무엇일까. 바로 ‘한국인’이기에 지닐 수 있었던 남다른 ‘한국적 가치, 문화’가 아니었을까.

한국인은 유전적으로 손을 잘 쓰는 장장근이 발달돼 있다. 한국이 국제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스포츠는 90% 이상이 손을 쓰는 운동이다. 복싱 핸드볼 골프 양궁 하키 배드민턴 등. 세계기능올림픽에서 한국이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것도 같은 까닭이다.

서울교대 미술과 조용진교수는 “한국인은 오른쪽 이마가 커 이론이나 분석력보다는 직관을 통한 상상력이 뛰어나다”고 지적한다. 오른쪽 뇌가 발달하면 보통 손재주가 뛰어나다.

숭산스님은 논리의 천재들이 다니는 하버드대에서 짧은 영어 몇마디로 천둥같은 충격을 안겨줬다. 후에 그의 제자가 된 하버드출신 현각은 “논리와 분석이 끊어진 직관으로 그렇게 단번에 핵심을 찔러 버린 사람은 그 때까지 본적이 없었다”고 고백했다.

비디오라는 캔버스 위에 폭포처럼 넘치는 상상력을 쏟아낸 백남준은 이미 70년대에 전세계가 신경망처럼 얽힌 지구촌초고속전산망을 비디오아트를 통해 예언했다. 철학자 김재권은 분석에만 길들여진 미국 철학계의 패러다임을 직관력 상상력으로 ‘통합―분석’해 세계적 철학자로 우뚝 설 수 있었다.

미연방 교육부의 공식연구 대상이 된 고흥주씨 가족은 8명에 박사학위만 12개. 이 가족은 아침식사는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한 식탁에 빙 둘러앉아 같이 했다. 매일 저녁 책상 8개를 한방에 갖다 놓고 온 가족이 공부로 밤을 지새웠다. 한마디로 ‘밥상공동체’요 ‘책상공동체’였다.

정명훈 정명화 정경화 등 한 집안에서 세계적인 음악가가 줄줄이 나올 수 있게 만든 힘도 정씨 가족의 ‘끈끈한’ 공동체의식이 아니었을까.

한국인들은 ‘다이내믹’하다.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같다. 도저히 이룰 수 없을 것 같은 일들을 기적처럼 이뤄내는 힘을 ‘신명’이라 불러도 좋으리라. 정명훈은 웬만한 오페라 악보 같은 것은 보지 않고도 ‘신들린 듯이’ 지휘한다. 강수진의 춤사위엔 남의 혼(魂)을 끌어내려는 듯한 ‘무(巫)’의 흡인력이 있다. 이를 일컬어 유럽인들은 ‘동양의 혼’이라 하던가.

한국불교는 티베트불교와 같이 신비적이다. “바로 이 샤머니즘적인 그 무엇 때문에 서양인들은 정신없이 한국불교에 빠져든다”는 게 현각의 얘기다.

“난 영원한 떠돌이다. 나는 늘 시대의 최첨단지대에서 아슬아슬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이우환의 얘기나, “한국인은 기마민족이기 때문에 한곳에 머물러 살면 안된다. 자꾸 바람처럼 세계로 내달아야 한다”는 백남준의 얘기나 우리에겐 모두 어김없는 ‘희망의 메시지’들이다.

〈김화성기자〉mar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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