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한창훈 산문소설 '바다도 가끔은…' 펴내

  • 입력 1999년 10월 29일 20시 54분


소설가 한창훈(36)에게 거문도는 냄새 몇 가지로 다가온다.

“어머니가 밥 지으며 아궁이에 동생의 속옷을 말릴 때 나는 냄새, 콩가루에 밥을 비벼 먹을 때마다 나는 냄새, 그리고 바다 냄새. 아침에 운동장에 올라서면 사방 바다에서 불어오는 그 맑은 냄새…”

그가 산문소설 ‘바다도 가끔은 섬의 그림자를 들여다 본다’ (실천문학)에 퍼뜨린 ‘글의 향기’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맑은 바다냄새를 좇아, 작가는 열 살까지 살았던 거문도 유년의 기억 속으로 첨벙 자맥질해간다.

단지 냄새뿐일까. 육지로 나간 노인들에게 “오매 오매 내 삼도야” 탄식을 내뱉게 하는 거문도식 갈칫국 ‘항각구국’, 고사리 녹두나물을 넣고 끓인 붕장어탕, 살살 녹는 삼치회. 그 군침도는 기억들.

큰 바위 옆 몽돌밭에서 여인네들이 깔깔거리며 물장난을 치던 장면의 가슴 설레는 기억. 마을 사람들의 입소문으로 떠돌며 때로 등골을 선뜻하게 만들던 귀신 이야기…. 유년의 기억은 시간이 지날수록 짙은 색상을 띠게 마련.

떠난 사내의 회고담일지라도, 거문도 이야기에 역사의 상흔이 비껴갈 수는 없다. 영국의 거문도 점령(1885)에 대해서도 작가는 할 말이 많다. 영국 여왕이 다녀갔다는데 왜 사과 한마디도 없었을까….

〈유윤종기자〉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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