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물리’의 작. 한태숙 연출. 10월2∼15일 서울 종로구 동숭동 문예회관 소극장.
셰익스피어의 비극 ‘맥베스’의 초점을 아내 레이디 맥베스에 맞추었다. 남편을 부추겨 왕을 죽인 뒤 밤마다 몽유병에 시달리는 레이디 맥베스의 죄의식을 현미경 들여다 보듯 세밀히 그려낸다.
극은 궁중 의사에 의해 레이디 맥베스가 최면에 걸려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과거의 자신은 광기어린 권력욕에 사로잡혀 있었지만, 현재는 슬픈 죄의식에 빠져 있는 혼돈의 상황.
정동환(궁중 의사와 맥베스 1인2역)과 서주리(레이디 맥베스)의 절제되고 힘이 넘치는 연기와 대사가 볼만하다. 그러나 무대를 이끌어가는 것은 이들만이 아니다.
물체극 연출가 이영란은 이 작품에서 밀가루와 찰흙 등 오브제를 자유자재로 변형시켜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주인공의 심리상태를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그가 만지는 찰흙은 어느덧 피를 토하는 왕으로 변하고, 하얀 밀가루는 뱀으로 변해 레이디 맥베스의 목을 조르기도 한다.
원일은 5가지가 넘는 악기를 연주하거나 구슬픈 구음(口音)으로 레이디 맥베스의 의식세계를 표현한다. 슬플 땐 우는 소리를 내고 기쁠 땐 신들린 듯 북 연주를 하는 원일의 생음악은 작품에 신선도를 더한다.
연출가 한태숙은 “이 연극의 가장 큰 장점은 음악, 미술, 행위예술 등이 이미 ‘만들어져 있는’ 것의 반복이 아니라 무대 위에서 생생하게 ‘만들어지고 있는’ 점”이라고 말한다.
화수목 오후 7시반, 금토 4시 7시반, 일 3시 6시. 02―765―5475
〈전승훈기자〉jky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