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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1999년 6월 4일 18시 5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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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만큼이나 종교에 대한 이야기를 드러내놓고 하기 힘든 곳도 드물다. ‘종교의 전시장’이라고 불릴 만큼 다양한 종교가 공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종교에 대한 조금의 비판도 허용되지 않는 곳. 매스컴조차도 평소에는 개인적인 신앙고백의 차원이라 언급하지 못하다가, 종교관련 범죄문제가 터지고 나서야 마녀사냥식으로 ‘사이비’로 몰아댄다.
30∼40대 소장 종교학자들이 이 시대 종교현상을 에세이 형식으로 풀어 쓴 ‘종교다시읽기’(청년사).
한국출판인회의가 인문분야 ‘6월의 책’으로 이 책을 선정한 것을 계기로 한국종교연구회 장석만간사(서울대 강사)와 유성민교수(한신대 종교문화학과)가 대담을 나눴다.
▽장석만〓여타의 사회문제에 대해서는 상당히 균형잡힌 시각을 갖춘 한국의 지식층도 유독 종교문제에 이르러서는 도그마틱한 입장을 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가 우선 문제를 제기하고 싶은 것은 언론에서 함부로 쓰는 ‘사이비’나 ‘이단’이라는 용어입니다. 자칫 종교를 이해하기 보다는 종교를 사회에서 사라져야할 대상으로 ‘낙인찍는’ 흑백논리를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죠.
▽유〓최근 MBC의 만민중앙교회 관련보도의 문제점은 그 심층적 배경을 추적하지 않고 표피적인 고발 위주로 흘렀다는 점입니다. 종교를 사건위주로 쇼킹하게 다룬다면 결국 종교에 대한 무관심과 왜곡을 심화시킬 뿐입니다. 시한부 종말론이나 사회범죄를 저지른 종교문제가 발생했을 때는 그런 현상이 나타나게 된 사회적 배경을 추적해서 원인을 제거해야합니다.
▽장〓‘사이비(似而非)종교’란 ‘비슷하지만 종교가 아니다’란 뜻이고 ‘이단(異端)’은 ‘정통’을 주장하는 집단내에서 그 표준을 따르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공공성을 지닌 언론이 전 국민을 상대로 특정 종교집단에서나 통용되는 기준을 가지고 이단성을 단죄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더구나 국교도 없는 나라에서 말이죠. 종교단체가 법과 윤리에 반하는 범죄를 저질렀을 땐 법으로 단죄해야지 ‘종교가 아니다(사이비)’라고 몰아붙일 수는 없는 것입니다.
(두 좌담자는 우리나라처럼 다종교사회에서 종교간 경쟁적 선교로 인한 배타적인 분위기는 종교에 대한 공개적인 담론을 가로막는 가장 큰 요인이라고 동의했다.)
▽장〓종교의 배타성은 개항 1백년 이후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해온 개신교의 영향이 큽니다. 개신교는 어떤 종교보다도 ‘지적 신념체계’를 중요시하는 교단입니다. 의례나 실천보다는 ‘교리’를 믿느냐, 안믿느냐에 따라 구원을 결정하지요. 특히 국내에 들어와 있는 개신교단은 미국의 보수 근본주의 교단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문제는 국내의 기성종교나 신흥종교 모두 이러한 개신교를 닮아간다는 데 있어요. 교리 중심주의나 배타성은 종교간의 갈등을 불러올 여지가 큽니다.
▽유〓정치권도 그동안 종교를 지역감정처럼 악용해왔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습니다. 선거때나 종교기념일을 국경일로 제정할 때마다 종교계와 정치인들은 야합을 하는 경우가 많았지요. 결국 정치권이 종교의 페쇄성을 부추겨 온 측면도 강합니다.
▽장〓앞으로는 문화적 창조의 동인으로서의 종교의 역할에 대해 연구해야 할 때입니다. 그동안 종교예술품은 그 형식이나 기교 위주로만 관심을 가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굿을 하나의 의례나 연극으로 파악하고, 불교성지 탐방을 가면 대웅전에 있는 불상을 박물관 불상처럼 그 형식미만을 설명합니다. 그러나 종교 예술품을 볼 때는 그 속에 담긴 신앙적 의미를 찾아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정신적 삶의 근원을 알 수 있기 때문이지요.
▽유〓합리적 과학이성이 지배하는 20세기 말이 되면 종교는 세속화하고 소멸할 것이라는 전망이 60년대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종교는 인간 내적인 면이나 정치 사회적인 의미에서도 그 역할과 규모가 오히려 확대되고 있습니다.
▽장〓종교가 더이상 개인적 신비체험의 영역으로 머물러서는 안됩니다. 성교육이 성교의 테크닉을 가르치는 것이 아닌 것처럼 종교담론도 신앙교리를 가르치자를 것이 아닙니다. 종교문제에 대한 시각과 올바른 종교생활을 해나갈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자는 것이지요.
〈전승훈기자〉raphy@donga.com
★「종교 다시읽기」(한국종교연구회 지음)★
소장 종교학자 13인이 이야기 형식으로 풀어쓴 에세이 종교학. 지금까지 알고 있던 종교에 대한 편견과 왜곡된 상식을 뒤집는 ‘다시읽기’와 ‘문제제기’로 구성됐다. △유교는 종교인가 △종교는 환상인가 △죽음 너머의 세계에 무엇이 있나 등에서부터 △순수한 종교는 없다 △하느님은 남자편인가 까지 종교문화에 관한 35개의 질문에 대해 답하는 형식.
‘…읍니다’형태의 구어체로 서술되는 문장은 딱딱한 학술서적의 형식도 파괴한다. 청년사. 14,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