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모딜리아니 「자화상」

  • 입력 1999년 6월 4일 18시 52분


까닭모를 비애를 감춘 한 남자. 팔레트를 쥔 오른손이 그가 화가임을 말해 준다. 눈가는 이미 물기를 머금어 촉촉하다. 화면의 왼쪽을 사선으로 관조하는 눈길에서 미세한 우수가 감지된다. 입가에 띤 섬약한 미소까지도 애상적이다. 그림은 전체적으로 피로와 무력감을 담고 있지만 결코 품위를 잃지 않는다. 황갈색은 자칫 감상에의 침닉을 신중하게 제지한다.

파리의 보헤미안, 아메데오 모딜리아니의 ‘자화상’이다. 파리의 카사노바. 불타는 태양 아래 펼쳐진 무절제한 여성편력. 숱한 기행과 소문. 지독한 빈곤. 마약과 음주. 수려하고 귀족적인 용모 속에 감추어진 창백한 감성. 낭만과 자유를 누린 정신적 귀족주의. 바로 모딜리아니다.

그러나 계속되는 빈곤과 마약과 방탕한 생활은 마침내 그의 심신과 영혼을 앗아갔다. 그는 지독한 고독 속에 36세로 요절했다. 이 그림은 그가 이승과의 인연을 접기 직전에 제작한 것이다.

“나는 아무래도 이 세상에서 보잘 것 없는 여행자에 지나지 않는 듯하다! 너희들이라고 과연 그 이상일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중)라고 했던 괴테의 말이 실감난다. 영광에 이른 순간 죽음은 그를 앗아갔다.

조용훈(청주대 국어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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