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그러진 대학문화下]「전통」빙자 판치는 폭력악습

  • 입력 1999년 5월 20일 19시 40분


서울시내 모 대학 응원단의 경우 올해 새로 가입한 신입생 10명 가운데 7명이 한달도 채 못돼 중도 포기했다. 개인을 인정하지 않는 동아리문화와 계속되는 선배들의 기합을 견디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대학내 일부 동아리와 동문회 등에서는 선배들이 규율을 잡는다며 후배들을 구타하는 악습이 아직까지도 남아 있다. 대학내에서 전통을 빙자한 폭력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뭘까.

★비뚤어진 집단의식

전문가들은 대학사회도 기성 사회 못지않게 집단문화에 젖어 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지연 학연 등을 통해 자기들끼리만 뭉치는 기성사회의 집단문화를 패거리문화라며 비판하면서도 대학생들 역시 알게 모르게 이같은 문화에 물들고 있다는 것.

동국대 사회복지학과 윤혜미(尹惠美)교수는 “과거 대학이 민주화 투쟁의 한 영역을 담당했을 때 선배들이 집단의 유대를 강화하기 위해 이용했던 행태들을 그후의 후배들이 맹목적으로 답습,모방하고 있다”고 말했다.

★남에 대한 배려부족

서울 모 대학에 근무하는 김모교수(43)는 풍물패 동아리소속 학생들의 사물놀이 연습소리에 노이로제가 걸려 있다.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들려오는 꽹과리소리에 수업 진행이 어려울 정도.

김교수는 “몇번인가 동아리방에서 연습하라고 주의를 줬지만 학생들은 이제 교수의 말은 귓등으로 듣는다”고 허탈해했다.

각 대학의 도서관 주변에서는 학생들간의 실랑이가 끊이질 않는다. 휴식시간을 이용해 족구 등 오락을 즐기는 학생들과 소음 때문에 공부에 방해가 된다며 항의하는 학생들간의 다툼이다.

★교수들의 책임 회피

현재 대학에는 학생들의 잘못을 바로잡아줄 ‘어른’들이 없다. 교수들은 학생들의 그릇된 언행을 보고서도 혀만 찰 뿐 좀처럼 나서질 않는다.

교수들이 스승이기를 포기하고 단순한 지식전달자로 전락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교수들은 또 “학생들을 나무랐다가는 ‘당신이 뭔데 그러느냐’며 대드는 등 봉변만 당하기 십상인데 누가 나서려 하겠느냐”고 한탄하고 있다.

그러나 학생들은 교수의 권위 추락은 교수들이 자초한 것이라고 지적한다. 권위주의 시대와 그 이후에도 많은 교수들이 보인 기회주의적인 태도로 인해 학생들이 교수사회에 대한 존경심을 잃게 됐다는 주장이다.

★사회적 권위의 실추

대학생들의 그릇된 문화에 대해 우리 사회전체도 상당부분 책임이 있다는 지적이 높다. 사회가 청년들의 행동에 모범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으며 대학생들은 사회에서 본보기로 삼아야 할 대상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연세대 김영석(金永錫·신문방송학)교수는 “남을 배려하지 않고는 나도 자유를 누릴 수 없다는 인식이 사회에 뿌리를 내려야 한다”고 말했다.

〈홍성철·이완배기자〉sungchu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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