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책]장회익/글 밭에서 캐낸 「자연의 생명」

  • 입력 1999년 5월 14일 19시 41분


내가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월든’을 읽은 것은 미국에서 학위논문을 거의 마쳐가던 무렵이었다. 관습과 문명의 껍질을 벗어던지고 삶의 본질 속으로 뛰어드는 필자의 생생한 경험담이 깊은 감명을 주었다. 정말 우리는 거의 필요하지 않거나 오히려 거추장스러운 짐만 될 뿐인 것들을 얻기 위해 자연을 얼마나 훼손하며 또 자신의 소중한 생애를 얼마나 낭비하며 살아가는가?

너무도 감격했던 나는 모처럼 지도교수와 ‘의미있는 대화’를 나누었을 때 이 책을 읽은 일이 있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그는 가벼운 미소와 함께 고교생 때 읽었다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남들은 고교생 때 읽는 책을 서른이 다 돼서야 읽었다는 사실은 분명 부끄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고교생 때 한 번 읽어치우는 책이라는 듯한 교수의 말에 나는 못마땅했다. 이 책은 결코 고교생 때 한 번 읽고 치워버리는 만만한 책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책을 굳이 꽃에 비유한다면 이 책은 향기로운 야생화에 해당하는 책이다. 더구나 생태계의 훼손이 심각한 지경에 이른 오늘 우리는 진정으로 이 책을 통해 자연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배울 수 있다.

그 후 나는 줄리언 헉슬리의 ‘계시없는 종교’와 칼 세이건의 ‘에덴의 용들’을 감동깊게 읽었다. 저명한 과학사상가였던 헉슬리의 ‘계시없는 종교’는 과학과 종교에 대한 내 신념에 새로운 불을 지펴준 책이며,‘에덴의 용들’은 우주 속에 전개된 생명과 지능형성의 역사를 독특한 필치를 통해 실감있게 보여주는 책이었다.

최근에는 칼 세이건의 전(前)부인 린 마구리스와 그의 아들 도리스가 함께 쓴 ‘생명이란 무엇인가?’가 출간됐고, 번역본 또한 나와 있다. 가히 생명에 대한 이해를 한 차원 높여준 책이라 할 수 있다.

책이란 저자와 독자 사이의 관계 속에서만 의미를 지니는 것이며, 특히 자연과학 책의 의미는 독자의 관심과 이해수준이 결정한다.

나는 대학을 졸업한 후 란다우와 립시츠가 쓴 ‘역학’을 읽음으로써 비로소 고전역학을 이해했다고 생각하는데, 이는 그 시기 내 관심사와 이해수준이 이 책과 일치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책읽기는 단순히 좋은 책을 찾기보다는 ‘내게 좋은 책’을 찾는 지혜가 더욱 소중하다.

장회익〈서울대교수·물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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