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대담/정영태-노대명]딴길로 가는 「제 3의 길」

  • 입력 1999년 5월 7일 19시 40분


영국의 사회학자 앤서니 기든스가 주창하고 영국의 토니 블레어 총리가 현실정치에 적용하고 있는 ‘제3의 길’. 좌파적 평등 복지이념과 자유주의적 개인주의 이념(시장경제)을 결합시켜 중도 좌파적으로 세계민주주의를 추구하겠다는 노선이다.

제3의 길은 우리에게도 중요한 화두다. ‘민주적 시장경제’를 내세우는 현정부 역시 이것을 하나의 모델로 삼고 있다.

그러나 비판도 만만치 않다. 좌우를 넘어서는 것이 아니라 좌우 절충에 불과한 것 아닌가, 평등 복지와 자유를 동시에 실현한다는 것이 과연 현실적으로 가능한가, 그리고 정치 경제도 비민주적이고 진정한 좌나 우도 없는 우리 현실에서 제3의 길을 운운할 수 있는가 등등.

때맞춰 영국 지성계가 제3의 길을 비판한 책 ‘제3의 길은 없다’가 번역 출간됐다. 옮긴이 노대명 중앙대강사(정치학)와 정영태 인하대교수(정치학)의 대담을 통해 제3의 길의 허와 실을 짚어본다.

△노대명〓81년 대처 집권 이후 영국에서는 신자유주의 체제로 인해 빈부격차와 실업문제가 심화돼 왔다. 이것이 제3의 길의 출현 배경이다.시장경제의 모순을 극복하자는 것이다.

△정영태〓사회주의권이 붕괴되면서 기존 사회주의의 모순을 극복하려는 대안의 하나이기도 하다.

△노〓그러나 토니 블레어 총리는 제3의 길을 현실정치에 투영하면서 복지 평등보다는 시장경제 논리에 치우치고 있다. 세계화와 세계자본주의를 그대로 받아들인 결과다. 외국자본에 매달리다 보니 국내 노동시장을 유연화시키고 그러다보니 노동자들의 고용 불안이 커지고 있다. 블레어의 제3의 길의 문제점은 불평등을 낳는 자본주의의 구조적 문제를 방치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대처와 다를 바 없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정〓제3의 길은 중도좌파가 아니라 신자유주의에 훨씬 가깝다. 평등과 시장경제의 조화가 아니라 시장경제와 세계자본주의를 철저히 따르는 것이다. 이 책이 비판하는 것도 이같은 내용이다. 그런 점에서 이책은 시의적절하며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제3의 길이 신자유주의와 다른 점이 있다면 시민참여 환경 여성 인종문제를 중시하고 국제기구의 민주적 운영 등 세계 수준의 민주주의를 강조한다는 것이다. 이는 긍정적인 요소다. 그러나 블레어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유고 공습에 적극적인 것을 보면 오히려 제국주의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자기 모순이다. 제3의 길이 말로는 가능하지만 현실 적용이 어렵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러면 우리는 제3의 길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노〓한국 사회에서 제3의 길이 유행하고 있는 배경은 우선 현정권이 이것을 모델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주의권 붕괴 이후 새로운 대안을 갈망하던 지식인층의 지적 공황과 맞아떨어진 것도 하나의 배경이다.

△정〓호기심 차원이 아닐까 싶다. 현실 정치에서 그 미래가 불투명하다면 제3의 길의 인기는 떨어질 것이다. 중요한 것은 영국과 우리는 상황이 다르다는 점이다. 영국에 비하면 우리의 자본주의는 미숙한 수준이다. 이런 현실에서 제3의 길이 내세운 ‘평등과 자유, 복지와 시장경제의 조화’를 성취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오히려 제3의 길에 숨어있는 신자유주의 논리에 이끌려 세계자본에 종속될 우려가 높다. 제3의 길이 신자유주의를 정당화시켜주는 논리로 작용할 수도 있다.현실과의 괴리다.

△노〓제3의 길 이론 자체에 문제가 있고 없음을 떠나 그것을 적용하려면 기본 인프라가 필요하다. 정치경제의 민주화, 시민사회의 활성화 등이 그것이다. 우리 사회 어디에 그런 바탕이 있는가. 그리고 진정한 좌나 우도 없지 않은가. 토대에 대한 진지한 논의도 없이 유행처럼 제3의 길을 신봉한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현정부가 이같은 고민 없이 제3의 길을 정치적 구호로 이용하는 것은 아닌지….

△정〓그래서 그것을 막을 수 있는 시민단체나 진보정당 등의 견제 세력이 시급하다.

★ 「제3의 길은 없다」★

영국의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문화이론가 스튜어트 홀 등 영국 지성 10여명이 영국의 ‘제3의 길’을 비판한 책. 94년 이후 ‘좌파와 우파를 넘어서’‘제3의 길’ 등의 저서를 통해 제시한 앤서니 기든스의 제3의 길 이론과 그것을 현실에 적용한 토니 블레어 총리의 공과(功過)를 분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제3의 길의 허점을 지적.

‘좌우를 넘어 초월적 정치를 꿈꾸겠다는 제3의 길이란 사실상 존재할 수 없는 정치프로젝트에 불과하다’ ‘자유와 평등을 조화시킨다는 제3의 길이 실제로는 평등 없는 자유로 귀결되고 있다’ ‘세계자본주의가 강요하고 있는 불평등구조에 대해 아무런 문제도 제기하지 않은 채 그나마 평등과 자유의 조화라는 이상마저 잃어버리고 있다’는 것 등이 주요 내용.

〈이광표기자〉kplee@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