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오래된 정원 (89)

  • 입력 1999년 4월 13일 19시 30분


나는 여름내 거기 내려가서 수박이며 참외며 푸성귀 따위를 사왔기 때문에 달동네 어구의 노점들이 모인 곳을 잘 알고 있었다. 일 나갔다 돌아오는 이 동네의 가장들이 술 먹고 남은 돈으로 가족들의 먹을거리를 사 오는 곳이기도 했다.

슬슬 내려가다 보니까 큰 길 입구하구 동네로 올라오는 길목에 사복들과 전경들이 떼로 몰려서서 검문을 하구 난리더라. 그래서 뛰어 내려가다가 얼른 멈췄지. 저 아래 행길을 보니까 아예 닭장 차까지 대놓았더라니까.

건이 말이 맞는 모양이다. 시체말루 후리갈이 하는 거지. 군경 합동으루 검거해서 무슨 정화교육인가 시킨다지 않데?

바로 그거야. 우리 경우에는 또랑 치다 가재 잡는 격이 되겠지. 슬그머니 돌아서려는데 아래 섰던 사복하구 눈이 마주쳤어. 어이 자네 일루 와봐, 그러는 거야. 나 말요? 했더니 그래 일루 오라니까, 하면서 내게 빠른 걸음으로 올라오는 거야. 그러니 어떡해. 냅다 뛰었지.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생각했겠지. 넌 콱 찍혔다!

글쎄 말야. 어쩐지 기분이 안좋아. 생각해 봐라. 이 친구들 이곳 통반장이며 동네 사람들에게 여기 세 든 사람들 동향을 파악할텐데 누군가 우리에 관해서 발설을 할지두 몰라. 조오기 저 집에 젊은 놈 두 놈이 있습니다, 하구 말야.

시간이 걸릴테지만 오늘 밤 새고 내일 새벽에 나가자. 새벽에는 저치들 교대두 할테구 시내 곳곳에서 철수를 할거야.

동우와 나는 어둠 속에 앉아서 주위가 조용해지기를 기다렸다. 밤이 깊어지자 인기척도 없어지고 먼데서 불어대던 호루라기 소리도 멎었다. 아마 닭장 차와 함께 관내 파출소나 경찰서로 돌아간 모양이었다. 동우가 말했다.

배고픈데….

우리 라면이라두 끓여 먹을까.

그래 불 좀 켜봐.

내가 더듬더듬 형광등의 스위치를 켰다. 눈이 부셔서 재채기가 다 나왔다. 불을 켜니까 어둠이 일시에 물러가고 두려움도 사라지는 듯했다. 더구나 라면을 끓여서 신김치하고 허겁지겁 먹고나니 세상 걱정은 저리 가라였다. 나는 뒤창문을 열고 바깥을 내다보았다. 팔 하나만큼 거리에 뒷집의 시멘트 블록 담장이 있었고 이웃집의 스레트 지붕이 연결되어 있었다.

야 까짓거 자자. 오늘은 별 일 없겠지.

동우가 자리를 펴고 벌렁 누우면서 말했다. 나도 그건 동감이었다.

걱정은 내일 해가 뜨면 하기루 하지 뭐. 그런데 너 약속 장소 잊지마라.

응, 알구 있어.

우리는 옷을 입은채로 주요 문건을 꾸려둔 가방은 머리맡에 둔채로 잠들었다.얼마나 잤을까. 밖에서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먼저 그리고 동우가 이어서 벌떡 일어났다. 우리는 신을 집어다가 방안에서 신고 있었다.

여보세요, 문 좀 열어봐요.

우리는 이미 뒤창문을 열어 놓고 있었다.

누구세요?

동우가 내게 눈짓을 하면서 말했고 나는 창문을 딛고 올라서서 맞은편 담장에 한 발을 걸치고 있었다.

이 동네 반장이오.

<글:황석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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