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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1999년 4월 1일 19시 4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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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교수]
△65세 △서울대 국문과 졸업, 문학박사(단국대) △74∼89년 이화여대 국문과 교수 △90∼91년 문화부장관 △95년 이화여대 석좌교수(현) △주요저서〓세계문장대사전, 한국과 한국인, 축소지향의 일본인 등
[吳世正교수]
△46세 △서울대 물리학과 졸업, 이학박사(미국 스탠퍼드대) △81년 미 제록스연구소 연구위원 △84년 서울대 물리학과 교수(현) △89∼94년 대통령자문기구 ‘21세기위원회’위원 △97년 포항공대 방문교수(현)
▽이어령교수〓이야기의 화두를 꺼내기 위해서는 우선 20세기 자연과학 패러다임의 변화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물리학이나 화학의 발견은 한 시대를 살아가는 정신문화의 화두까지 제공했지요. 이제 학자들이 서로 다른 자신의 학문적 ‘사투리’로 이야기하던 시대는 끝났다고 생각합니다.
▽오세정교수〓바로 그 이유가 21세기의 패러다임을 모색해보자는 이번 대담에 국문학자와 물리학자가 등장하게 된 이유인 것 같군요.(웃음)
★‘모든것 정복’환상깨져★
▽이〓20세기를 통틀어 봤을 때 미시적으로 굉장히 큰 변화가 일어났던 것같지만 1천년 단위로 봤을 때는 그리 큰 변화가 없었습니다. 과학분야에서 본다면 19세기 뉴턴의 만유인력법칙과 다윈의 생물학적 진화론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고 경제도 산업혁명의 연장에 불과했습니다. 행정이나 기업조직도 20세기 초의 군대조직을 모델로 한 것에서 크게 변하지 않았지요.
▽오〓그렇습니다. 20세기를 지배한 주요 패러다임은 19세기의 ‘결정론적 세계관’이었습니다. 세계는 모든 것을 일목요연한 수식으로 표현할 수 있고, 변화를 예측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그러나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이 등장하면서 인간이 모든 것을 알고 정복할 수 있다는 환상은 깨졌습니다. 상호작용이라는 ‘복잡성’을 이해해야 전체를 파악할 수 있다고 깨닫게 된 것이지요. 생명체의 경우 각 기관의 기능도 알아야 하지만 상호작용이 더 중요합니다. 이제 자연과학의 무게중심은 물리학에서 생물학 쪽으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이〓사회과학 분야에서는 더욱 심각합니다. 소련이 갑자기 붕괴했던 것은 원인과 결과라는 선형논리로는 절대 설명이 되지 않아요. 전세계가 컴퓨터망으로 연결된 증권시장이 하루 아침에 폭락하는 것도 설명할 수 없는 일입니다. IMF도 동아시아의 경제위기를 예측하지 못했습니다. 예상 밖의 결론을 이끄는 ‘우발적인 요소’의 중요성이 자연과학이나 사회과학의 전면에 등장하게 된 것이지요.
★다가올 세기는 ‘문화의 세기’★
▽오〓예, 그렇습니다. 컴퓨터는 모든 것이 중앙집권적으로 연산되고 처리된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연현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몸만 하더라도 뇌에서만 판단하고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신체의 각 부분이 스스로 외부의 자극에 대해 통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인터넷이 개발된 이후 컴퓨터도 이제 분산화하고 있습니다. 인터넷의 발전으로 컴퓨터도 이제 몸통과 팔다리를 갖춰 진화하고 있지요. 숫자로 공식화하거나 계산할 수는 없지만 그래픽으로 그림을 그리고 시뮬레이션을 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복잡계 이론’은 현대 경제학에서도 많이 도입하는 이론입니다. 여기서 ‘문화역학(文化力學)’이라는 재미있는 개념이 생각나는군요.케인즈는 기업가가 투자할 때 시장조사 비용 기술 등 다양한 요소를 고려하지만 최종적으로는 ‘투자 심리’가 결정한다고 말했습니다.요즘은 이런 비과학적 변수의 결정을 미디어가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것이 바로 ‘문화역학적’인 요소입니다. 과학으로 짜여진 틀 속에서 변화를 주는 것은 바로 문화입니다.그래서 21세기를 ‘문화의 세기’라고 말하는 것이지요.
▽오〓자연과학자의 입장에서는 정량화되지 않은 이론은 뭔가 꺼림칙한 것이 있다고 느낍니다. 프리고진의 ‘복잡성의 과학’에 대해서도 많은 자연과학자들은 아이디어는 이해하면서도 정량화해서 테스트해볼 수 없다는 데 불만을 제기합니다.학문의 발전이 일상생활에까지 영향을 주려면 정량화하려는 노력이 중요하지요.
▽이〓인터넷 커뮤니케이션의 가장 큰 특징도 ‘상대적’이란 것이죠. 인터넷은 모두가 발신자이면서 동시에 수신자입니다. ID 번호로 통용될 뿐 어떤 권위(權威)도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콘텐츠’일 뿐입니다. 20세기까지 통용됐던 일방적인 실체론이 상대적인 관계론으로 변화한다고 할 때 가족 시민 정당 등의 운영방식이 어떻게 변할 것인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생명공학 윤리확보 시급★
▽오〓특히 우리 사회에서는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의 벽이 높습니다. 생명공학 분야에서 눈부신 발전이 이뤄지고 있지만 생명에 대한 윤리나 철학은 황무지나 다름없습니다.원자폭탄의 경우 몇몇 핵보유국들에 대한 통제만으로도 확산 금지가 가능합니다만 병원 연구실에서 일어나는 생명복제는 통제가 불가능합니다. 핵연료처럼 먼저 만들고 나중에 규제할 수 없는 일이지요. 개발할 때부터 통제를 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생명공학에 대한 윤리 정립도 중요한 일입니다. 복제한 장기로 죽어가는 생명을 구할 수 있고 식량문제 해결도 가능한 장점도 있습니다. 영국에서 돌리양을 복제한 로슬린연구소도 2차대전 때 식량 증산을 위해 설립된 연구소지요. 70년대 심장이식 수술 때도 마찬가지지만 새로운 기술에 대해 감정적으로 거부반응을 일으키는 자세도 문제입니다.
▽오〓현실적으로 학문의 전문화로 인해 생명과학자가 윤리학을 하는 것은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전문지식을 갖추지 않더라도 장르간에 서로 이해하려는 노력이라도 있어야 합니다. 학문하는 사람들간의 벽을 허무는 일도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연구업적은 무시하고 외국 것만 인용하는 자세도 지양해야 한다고 봅니다. 국내의 인문과학자와 자연과학자들 사이에 직접 학문을 교류할 수 있는 통로가 넓어져야 합니다.
★통합의 발상법 지녀야★
▽이〓지금까지 ‘과학’과 ‘문화’는 서로 대립 관계였습니다. 심장이식수술과 터널시공, 파리 에펠탑 건립 등의 경우 문화인들의 윤리적 정서적 저항이 심했습니다. 특히 과학과 윤리가 가장 극명하게 대립했던 사건은 2차대전 때 나치의 유태인 학살이었습니다. 의학자들과 과학자들은 인간을 시험도구로 삼았죠.
이제 ‘이것이냐 저것이냐’하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보스 올(Both all)’의 발상법을 지녀야합니다. 이는 문화 패러다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연과학자와 예술가가 서로 만나 교류할 때 새 패러다임을 만들어낼 수 있지요.
▽오〓앞으로는 분화보다 통합력이 중요하다고 그러셨는데, 글로벌 시대에 국지전이 많이 일어나고 민족주의가 발흥하는 것은 어떤 이유입니까.
▽이〓글로벌한 세계 속에서 국지전과 민족전쟁이 많아지는 것은 아이러니입니다. ‘세계화’와 ‘민족주의’는 21세기 국제 정치의 가장 핵심적인 원리 중의 하나지요. 다극화되고 다양할수록 보편성을 상실하게 되고 문화원리가 강해지는 겁니다. 미국의 실리콘밸리에서는 1백여개의 민족이 모여 새로운 첨단기술을 만들어냅니다. 민족의 벽이 없기 때문에 각종 문화의 아이디어들이 합쳐져 글로벌한 첨단 정보를 만들고 있지요.
▽오〓‘일민족 일국가’라는 것이 폐쇄적이지만 않으면 ‘정체성(正體性)’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좋은 것 아닙니까. 관계가 중시되는 사회에서는 오히려 정체성이 있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이〓인터넷 사회원리의 세 가지 키워드는 ‘수평적 개방적 분산적’이란 말입니다. 우리도 21세기의 인터넷 패러다임에 맞춰 수직적 폐쇄적 중앙집중적인 사회구조를 바꿔야 합니다.
21세기의 지식인상은 르네상스 시대를 일궈낸 레오나르도 다빈치나 실학자 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鏞)같이 자연과학과 예술을 모두 통합하는 ‘토털맨’이어야 합니다. 정보와 문화적 마인드를 겸비한 총체적 인간이 미래형 지식인이라고 말할 수 있지요.
〈정리〓전승훈기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