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묵은 신인 장대송씨, 첫시집「옛날…」출간

  • 입력 1999년 3월 9일 19시 48분


시인 장대송(37)의 낮동안 거처는 방송국 스튜디오다. 그의 직업은 불교방송 라디오프로듀서. 그러나 성우들을 향해 사인을 던지는 사이사이 그의 마음은 밀폐된 스튜디오를 떠나 언젠가 가보았던 동해안 삼척의 화전민마을부터 서해안의 안면도, 전라도 김제평야를 휘돌아 서울 중랑천 뚝방길까지 내닫는다. 정처없는 그의 방랑은 시가 됐다.

‘지평선에 갇혀 까마득히 사라져봤으면//몸, 나오기 전 있던 것도 없어지고 사라져갈 곳 없어서/나 어디론가 떠나갈 곳도 아예 없어서/찾아간 김제평야/…이 지평선에 갇힌 生쯤이면 이승 저승 필요치 않을 터이고/생각의 가루조차 모두 사라져갈 것이다…’(‘김제평야에 갇히다’중)

9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지만 그가 시에 전념한 것은 불과 3년전부터. 국문과를 졸업했으니 한번 응모나 해보자고 썼던 시가 당선작이 되자 “기쁘기보다 무서웠다”.

시에 대한 두려움을 품고 처음부터 꼭꼭 한걸음씩 다시 딛은 그는 등단 8년만에 곰삭은 시 60편으로 첫 시집 ‘옛날 녹천으로 갔다’(창작과비평사)를 펴냈다. 이제는 “그림자를 통해 본질을,허상을 통해 실상을 보는 것이 시쓰기”라는 명제 하나를 온전히 자기 것으로 갖게된 시인. 그래서 이렇게 노래한다‘검은 물이 수런거린다/물이 맑아지면 반사시킬 게 없어진다고.//검은 물위에 먼지들이, 어두운 생각들이, 검은 물에게 수런거리고 있다.…’(‘밤섬을 바라보며’중)

〈정은령기자〉ry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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