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책]강만길교수의「20세기 우리역사」

  • 입력 1999년 1월 18일 19시 59분


진보적 역사학자 강만길 고려대교수가 정년퇴임을 앞두고 역저를 내놓았다. ‘20세기 우리 역사’(창작과 비평사).

일제 식민통치로 시작돼 IMF 식민체제로 막을 내리게된 20세기 한국사에 관한 기록이다. 비극의 현대사였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치열하고 가장 당당했던 독립운동사를 중심에 놓고 분단과 6·25, 독재와 민주화투쟁 등 26개 주제로 나누어 서술하고 있다.

‘강만길교수의 현대사 강의’란 부제가 붙은 이 책엔 40년 가까이 응축시켜온 그의 ‘실천적 역사관’‘분단 극복의 역사관’이 관통하고 있다. “역사책은 이미 실증되고 논증된 사실만을 골라서 쓴다. 개인의 주관이 배제되는 셈이다. 그러나 역사 강의는 다르다. 강의하는 사람의 주관이 들어갈 수도 있고 역사를 가정해볼 수도 있고 좀더 적극적인 전망도 가능하다”는 말처럼 저자의 역사관이 강하게 반영돼 있다.

강교수의 시각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대목은 ‘일제시대의 좌익운동’이다. 그동안 일제시대 좌익운동을 공산주의운동의 하나쯤으로 여겨온 게 우리 학계의 현실. 강교수는 그러나 좌익운동도 엄연한 민족해방투쟁으로 보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민족주의와 사회주의계통의 독립투쟁이 하나로 합쳐질 때 비로소 민족해방운동사의 전모를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강교수의 이같은 견해는 결국 좌 우 모두 우리의 삶이었고 그 둘을 아우를 수 있는 대승적 역사관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강교수는 일제의 식민통치가 우리의 근대화에 도움을 주었다는 ‘식민지 근대화론’도 가차없이 비판한다. 우리 민족의 자결권을 빼앗은 것이 일제의 식민통치인데도 그저 단순한 경제 통계 수치만 보고 식민지 근대화 운운하는 것은 역사의 왜곡이라는 지적이다.

정치나 경제와 같은 어느 하나의 측면에서만 역사를 바라볼 것이 아니라 이것들을 포함해 우리 삶과 문화 등 전체적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한다는 저자의 역사관이 잘 드러난 경우다. 이같은 역사관이 바로 이 책의 저류다. 또한 저자의 40년 가까운 한국사 연구의 바탕이었고 독재의 시대, 불의에 맞서 싸울 수 있게 해준 힘이기도 했다.

강단은 떠나지만 그의 연구는 계속될 것이다. “부담없이 연구에만 매진할 수 있게 돼 오히려 홀가분하다”는 강교수. 그래서인지 퇴임이 한달 넘게 남았음에도 이미 대학 연구실 방을 비우고, 자신의 호를 따 학교 가까운 곳에 ‘여사서실(黎史書室)’이란 서재를 마련했다. 12,000원.

〈이광표기자〉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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