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변혁기 3인의 견해/유하-박노해-김병익]

입력 1998-09-30 19:57수정 2009-09-25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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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살아있는 문화는 본질적으로 불온하다. 문화의 본질이 꿈을 추구하는 것이고 불가능을 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김수영시인의 이 오래된 발언이 최근 문학계에 한 화두로 던져지고 있다. 직설이 금지됐던 시대, 사회의 선지자노릇을 했던 문학의 불온성은 여전히 유효한 것인가. 90년대 문학 혹은 문화는 어디에서 그 불온성의 에너지를 충전할 것인가.

이를 둘러싼 최근의 주목할만한 발언은 대중문화의 가치에 대한 시인 유하와 박노해의 상반된 견해. ‘바람부는 날에는 압구정동에 가야한다’로 대표적 ‘신세대 시인’으로 꼽혀온 유하와 ‘노동의 새벽’의 박노해는 각각 자신들의 기존입장을 수정하는 발언을 내놓았다.

유하는 지난17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2000년을 여는 젊은 작가 포럼’중 “박노해씨는 90년대에 태어났더라면 서태지가 됐을 거라고 말했지만 나는 90년대에 태어났더라면 노동자시인 박노해가 됐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대중문화가 내 시적 에너지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것이 시적 엄숙성으로부터 억압받고 이단시 됐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금 대중문화는 공식문화의 권력을 얻는 대신 저항정신 불온성을 상실했다”는 것이 그의 주장 요지.

반면 출소 직후 가진 기자회견 때부터 “문장스타일까지 신세대적인 비트와 리듬에 맞추려고 노력한다”고 밝힌 바 있는 박노해는 “삶의 모든 모순이 생활 문화 영역으로 중심이동한 90년대에는 신세대들이 펼쳐보이는 ‘새로움(New)’ ‘지금(Now)’ ‘네트워크(Net)’ 추구의 특성이야말로 주목해야 할 가치”라는 긍정론을 펴고 있다.

한편 원로 문학평론가 김병익도 계간‘리뷰’가을호에 기고한 ‘언더그라운드문화에 대하여’에서 문학을 포함한 문화의 전위적 에너지 상실을 우려하는 글을 내놓아 눈길.

김씨는 “(60년대 미국)서부의 히피들은 곧 여피로 돌변해 유능한 자본투자가의 하수인이 되고 동부 지하미술가들의 낙서쪽지는 부르주아의 투기대상이 됐다”며 가장 전위적인 문화집단으로 평가받는 언더그라운더조차 “자본의 그물로부터 헤어나지 못하는 운명”이라고 지적했다. 언더그라운더들이 새로운 문화권력이 된 공백을 누가 메꿀 것인가.

“소설가같은 전통예술집단이야말로 자신들의 멸종을 막기 위해 페쇄된 공간으로 숨어드는 언더그라운더가 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전위성을 상실한 보수적인 저항집단이지 않을까”라는 것이 김씨의 우울한 예측이다.

〈정은령기자〉ry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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