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式 추석선물]실속형 「맞춤 세트」뜬다

  • 입력 1998년 9월 27일 18시 29분


《“할아버지 할머니 안녕하세요. 빨리 시골에 가서 사과도 따고 삼촌들하고 고기도 잡고 싶어요.”

경기 과천시 김희숙주부(34). 추석을 앞두고 시부모님께 무슨 선물을 할까 고민에 빠졌다. 아이들은 벌써 ‘철 모르고’ 설레이는데. 예년처럼 갈비세트를 하자니 부담스럽고…. 올해는 현금과 함께 홈 비디오 촬영 실력을 살려 자체제작한 ‘뮤직비디오’를 준비했다. “2년전 시부모님께 VTR을 사다드렸지요. ‘뮤직비디오’에는 쌍둥이 손녀의 깜찍한 춤과 노래가 들어있고 추석인사도 담겨 있어요.”

IMF체제의 첫 추석. 지갑이 얇아진 올 추석 선물문화의 키워드는?》

▼실용성▼

LG백화점이 최근 수도권 주부 1백5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선물비용은 3만∼5만원대가 39.6%로 가장 많았다. 선물을 ‘현금’으로 하겠다는 사람은 54.2%.

추석을 앞두고 백화점 선물매장엔 1만∼2만원대 설탕 비누세트가 주력상품. 작년까지만 해도 잘 팔렸던 1백만원대 굴비, 2백만원대 코냑은 자취를 감췄다. 제일제당 마케팅실 김태열대리. “요즘은 상대방에게 꼭 필요한 물건이 아니면 구입자체를 포기하는 경향이 많다. ‘소유’보다는 ‘사용’ 위주의 실용적 선물문화가 자리잡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돈이 안되면 감동으로?▼

명절 때면 고객에게 줄 선물을 가장 많이 준비하던 보험사 직원들. 치열한 경쟁 때문에 선물할 대상을 줄이진 못하지만 내용물은 많이 바뀌었다. 삼성생명 하주호과장. “고객들에게 골프웨어 도자기 동양화 등 기호품을 선물하는 것이 유행이었다. 그러나 요즘엔 식료품이나 시내버스카드 지하철패스 등이 주류다. 이와 함께 컴퓨터 그래픽으로 직접 만든 메시지 카드를 끼워넣는 등 정서에 호소하는 방법을 주로 쓴다.”

K산업개발 최홍원과장(41). 지난 설날 중학교 1학년 딸로부터 받은 ‘쿠폰 선물’을 잊을 수가 없다. ‘심부름하기’ ‘안마해주기’ ‘뽀뽀해주기’ 등이 적힌 10장의 쿠폰. 사용기한이 없어 가끔씩 ‘요긴하게’ 쓰며 딸과 정을 나눠왔다. “이번 추석에는 딸에게 해줄 일을 찾아 쿠폰을 선물할 생각입니다.”

▼DIY와 선물이 만날 때▼

현대백화점이 이달초 고객 1천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받는 사람이 꼭 필요로 할 것으로 여겨지는 ‘맞춤선물’을 하겠다”는 응답이 59%를 차지. 상대방에게 물어보고 사거나 직접 세트선물을 맞추는 것도 IMF시대의 새로운 선물문화.

경기 성남시 분당구 정혜진(32)주부는 2만원으로 직접 세트선물을 꾸몄다. “설탕은 커피슈거로, 소금은 죽염으로, 홍차도 시부모님 취향에 맞춰 할인점에서 골랐죠. 바구니에 담아 직접 포장하고 나니 천편일률적인 세트 선물보다 나은 것같아요.”

가격비교서비스업체 ‘에누리정보’의 최근 조사 결과 백화점에서는 6만원하는 문배주가 할인점에서는 4만5천8백원, 2만5천원짜리 ‘스팸’세트는 2만원. 각종 매장을 돌아다니며 가격을 꼼꼼히 비교한 뒤 사는 것도 새로운 추세.

신한경제연구소 박영배책임연구원. “선물은 ‘생계형’‘처세술형’에서 센스있는 ‘자기표현 행위’로 발전해왔다. 선물가격의 거품이 빠진 IMF시대에는 조그만 선물로 자기표현을 할 수 있는 기회다.”

〈전승훈기자〉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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