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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1998년 4월 9일 19시 5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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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 그렇게 많은 위조 달러가 유통되고 있다는 것이 확인된 것도 놀랍지만 공신력이 생명인 시중 6개 은행이 손실 보전 차원에서 경찰에 신고도 하지 않고 이중 1만3천8백달러를 원소유자에게 한화를 받고 돌려준 국내 은행의 ‘반(反)글로벌 스탠더드’도 큰 문제다.
‘위폐(COUNTERFEIT)’라는 빨간 스탬프를 찍었다지만 위폐가 다시 유통될 가능성은 고려하지 않았다.
서울 용산경찰서는 9일 외환 기업 한일 서울 조흥 보람은행 등 시중 6개 은행이 미국계 RNB은행의 홍콩지점과 싱가포르 UBO은행 등에서 위폐로 판명돼 되돌려받은 1백달러짜리 위폐 1백38장을 다시 시중에 유통시킨 혐의를 잡고 수사중이다. 나머지 위폐는 은행이 보관하고 있거나 폐기한 뒤 손비처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에 따르면 외환은행 압구정지점은 지난달 중순 RNB은행 홍콩지점으로부터 되돌려 받은 1백달러짜리 위폐 92장을 사업가 우모씨에게 돈을 받고 되돌려준 것으로 드러났다.
외환은행은 지난달 중순 기업은행 의정부중앙지점에서 1백달러짜리 위폐 6장이 재유통돼 물의를 빚자 우씨에게 건네줬던 위폐중 89장을 회수했다.
외환은행은 이에 대해 “부도 어음의 경우에도 환불을 받으면 소유주에게 되돌려 준다”며 “위폐의 소유권 문제가 있기 때문에 돈을 받고 되돌려준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또 “위폐 소유자의 신원이 확실한 경우에는 경찰에 신고할 의무도 없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형법 210조에는 위폐를 취득한 뒤 이를 다시 유통시켰을 경우에 ‘위조통화 취득후의 지정행사’로 2년이하의 징역이나 5백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게 돼 있어 법률적 논란이 예상된다.
경찰은 또 보람 기업(이상 1백달러 18장) 서울(8장) 한일 조흥은행(이상 1장)에 대해서도 같은 혐의로 수사를 벌이고 있다.
기업은행과 한일은행은 고객에게 돈을 받고 위폐를 전달한 뒤 “즉석에서 찢어 버리도록 했다”고 주장했다.
국내에 이처럼 많은 위폐가 나돌 수 있는 것은 위폐 감식전문가의 숫자가 외국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 국내 외환의 대부분을 취급하는 외환은행에서는 불과 3명의 전문가가 하루에 1백만달러어치 이상의 화폐를 감식하고 있는 실정이다.
외환은행은 대당 1백10만∼1백80만원짜리 최신형 일제 화폐 감식기 30대를 보유하고 있지만 위폐 식별률은 50∼80% 수준에 머물고 있다.
외국의 경우 수많은 위폐 감식전문가 양성 기관에서 풍부한 인력을 조달받아 기계 의존도가 낮고 적발률도 90%를 넘는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
한미합동법률사무소 선덕규변호사는 “신용도를 생명으로 하는 은행이 대량의 위폐를 감별하지 못하고 수출했다는 것은 국제적 수치”라며 “한국의 신용도에 타격을 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훈·윤상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