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재훈씨, 서정소설 「만남, 은어와 보낸 하루」펴내

  • 입력 1998년 3월 27일 08시 10분


불현듯 잠에서 깨어나 혼자 우두커니 앉아 있는 밤. 거실에는 참으로 많은 것들이 잠들지 못하고 있음을 본다. 빨간 눈을 뜨고 있는 비디오의 전원표시, 전기밥통의 푸른 전원표시, 냉장고의 전원표시…. 모두들 깨어 있다.

‘아, 저것들이 우리 시대의 별들인가….’

젊은 시인 원재훈의 서정소설 ‘만남, 은어와 보낸 하루’(생각의나무 펴냄).

소설은 한 마리 작은 멧새가 되어 어느 가을의 들판을 날다가 고요히 숨을 거두고 싶은, 이름 없는 야산에서 한 그루 나무로 살고 싶은, 그런 삶을 꿈꾸는 시인의 염원으로 가득하다.

전생에 은어로 만나 사랑했던 한 남녀가 현생의 섬진강 어느 기슭에서 다시 만난다. 그리고 서로 기억하고 있는 전생에서 은어로서의 삶의 여정을 잔잔한 감동의 언어로 전해준다.

그 여정에는 만남의 순간이 있고, 심해(深海)에서의 긴 방황과 인내가 있고, 강어귀를 찾아들면서 시작된 사랑의 기쁨이 있다. 이별과 고독, 그리움과 기다림, 재회와 행복, 그리고 영영 이별하는 운명이 있다.

돌말을 뜯어먹다가 쏘가리들의 분노에 찬 얼굴에 놀라기도 하고, 낚시꾼들에게 생명을 위협받기도 하면서 세상의 넓이와 깊이를 알게 된다.

작가는 은어의 입을 통해 이런 말을 들려준다. ‘살아간다는 것은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이런 길을 가는 것’이라고. 그리고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을 찾으려면 자신을 내어주어야 한다’고, ‘중요한 것은 처음의 마음을 잃지 않는 것’이라고.

여름이 다 갈 무렵 섬진강가에 누워서 꿈을 꾸듯, 천천히 아주 천천히 강물이 흘러가듯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녀가 차를 끓이고 있다. 향기처럼 그리움이 온 방안에 퍼져 나간다….’

〈이기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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