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출판불황에 작가들 「글마당」실종

  • 입력 1998년 3월 16일 07시 27분


출판대란이 문학계를 뒤흔들고 있다.

부도도미노를 피하기 위해 문학계간지 지면축소, 출간종수 줄이기 등의 ‘몸집줄이기’로 대응하는 출판사들. 그러나 출판사의 자구책은 작가들에게는 글 쓸 마당의 ‘실종’으로 되돌아온다.

문학서적 전문출판사인 문학동네는 98년 1백종의 책을 출간할 예정이었지만 30종으로 축소했다. 이미 원고가 들어온 소설가 J씨의 창작집 등은 현재의 부도도미노파장이 가라앉은 6월 이후로 무기한 연기했다.

세계사는 자사주최의 ‘작가세계문학상’ 98년 수상작 ‘어린숲’까지만 출간한 뒤 당분간 시장동향을 관망할 계획이다. 베스트셀러가 될 것으로 기대하는 프랑스 소설 ‘나폴레옹’(가제)은 이미 번역이 끝나있지만 출간일자는 미정. 열림원도 시리즈로 발행하고 있던 ‘프랑스여성작가소설선’ 발행을 무기한 중단키로 했다. 민음사도 톨스토이전집 출간을 기약없이 연기했다.

출간종수 축소와 병행되는 현상은 ‘안 팔리는 작품은 출간 못한다’. 종수를 줄이는 대신 판매가 보장되는 ‘지명도 있는 작가’의 작품 광고와 판매에 전력을 기울일 방침이다.

상반기중 민음사는 밀란 쿤데라의 신작 ‘정체성’, 창작과비평사는 소설가 공지영의 창작집, 문학과 지성사는 하반기에 완결될 신경숙의 장편소설 ‘기차는 7시에 떠나네’, 이문열의 대하소설 ‘변경’, 열림원은 류시화와 정호승의 시집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당분간 신예작가들에게 과감한 지면투자를 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게 출판사 편집자들의 전망. “침체국면을 타개할 만한 대작이 나와야 한다”는 주장이나 98년 한해 판매실적에 따라 출판사간의 판도가 급격히 변할 것이라는 예측도 설득력있게 펼쳐진다.

출판사의 몸집줄이기로 ‘날벼락’을 맞은 것은 작가와 번역가들. 외국소설의 경우 번역이 끝나도 출간전까지는 번역료를 지급하지 않는 계약에 따라 번역자들이 고된 작업을 끝내고도 빈손이다. 밤을 새워 완성한 원고를 넘겨놓고 출판사의 ‘처분’만을 기다리는 작가들도 속출한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자 문인들도 소매를 걷어붙이고 나섰다.

9일 고은 신경림 조정래씨 등 작가 95명은 “새 정부는 출판계 실상을 정확히 파악하고 필요한 응급지원대책을 시급히 마련하라”고 촉구하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문학전문출판사 중 도매상부도의 최대피해자로 꼽히는 문학동네의 경우 이 출판사에서 책을 발간한 작가 신경숙 안도현 은희경 전경린 김영하 조경란 등이 이달말 교보문고에서 ‘문학동네 살리기 팬 사인회’를 열 계획이다.

그러나 대다수 작가들은 이번 시련을 ‘아프지만 거쳐가야 할 통과의례’로 받아들인다. 전업작가인 소설가 이순원은 “작가들이 어려움은 겪겠지만 지면이 줄어든만큼 작품이 엄선되는 효과는 있다”며 “단편소설의 전성기였던 70년대, 신인작가들이 창작집 1권을 묶어내는데 걸린 시간이 평균 5년이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정은령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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