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수사국(FBI)이 유너버머의 반문명 논문을 들고 찾아간 사람은 「네오 러디즘」의 권위자인 작가 커크패트릭 세일이었다. 컴퓨터를 망치로 부수며 개인의 권리와 자율성을 침해할 뿐인 현대산업기술을 비판해 온 인물이었다.
선언문을 살펴본 그는 『학술용어로 가득찼으나 논리적 구성이 조잡하고 논의도 초점이 없다』면서 『곳곳에 내 주장을 인용한 흔적이 보인다』고 혹평했다. 러다이트 운동의 후예를 자처하는 네오 러다이트 눈에도 유너버머의 이론은 허술했고 행동은 그릇됐다는 것이다.
러다이트는 19세기 초 영국에서 일어났던 기계파괴 운동으로 전설적인 지도자 러드의 이름에서 유래한다. 당시는 근대 합리주의 사상과 뉴턴 역학에서 싹튼 산업혁명의 여파로 동력을 이용한 직기가 노동자를 대체하던 무렵, 이미 대규모 농지를 확보하기 위한 「엔클로저」의 영향으로 농토를 잃은 농민들은 임금 노동자의 수입마저 잃을 위기에 놓였던 것이다. 새로운 노동환경에 대응할 능력이 없던 이들은 「악마같은 존재」인 기계에 분노와 절망을 터뜨렸다. 생존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하는 한편 사회 변화의 기류를 되돌리려 시도한 것이다. 나폴레옹 전쟁이 끝나자 귀향한 군인중 일부가 가담하면서 폭동으로 번졌다. 러다이트운동은 무자비한 군대에 의해 진압되었다.
러다이트의 뒤를 이어 현재 진행중인 후기 산업혁명 혹은 정보혁명의 기술문명을 비판하고 나선 세력이 「네오 러다이트」였으며 그들의 사상은 「네오 러디즘」이라 불린다.
네오 러디즘의 권위자인 세일은 러다이트가 남긴 교훈으로 △기술은 가치중립적이 아니며 때론 해롭다 △산업화는 전통을 파괴하고 현재를 부패시키며 미래를 불안하게 한다 △산업과 결탁한 국가는 개혁을 무산시킨다는 점을 확인시켜주었다고 주장한다.
그의 대안은 유너버머의 폭력노선과는 다르다. 현대 기술문명이 무엇을 위해 존재해야 하는가, 사회는 과연 나아질 것인가, 레스터 더로가 말한대로 전혀 진보되지 않은 목적을 위해 진보된 기술이 사용될 가능성은 없는가 하는 점 등에 관해 집중적인 문제제기를 함으로써 대중의 의식에 호소하면 부분적이나마 바로잡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술이데올로기에 대한 정교한 철학적 규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19세기 초 직물 기계를 파괴한 러다이트들이 느꼈던 고용 불안은 현대에도 여전히 존재한다. 제레미 리프킨은 저서 「노동의 종말」을 통해 인류는 현재 기술 진보에 대한 비싼 대가를 치르고 있다고 주장한다. 국제기업이 과거에 비해 훨씬 적은 노동력으로 엄청난 양의 재화와 용역을 생산해 낼 수 있게 된 기술 유토피아의 이면에는 수백, 수천만의 소외된 노동자가 생겨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품질관리와 리엔지니어링, 다운사이징은 노동자들의 삶의 터전조차 빼앗아 이제 노동계급의 진혼곡이 들린다고 주장한다. 흉악범죄가 증가하는 것도 실업률의 상승에 이어진 것이라고 한다. 빌 게이츠가 「로드 어헤드」에서 정보산업분야가 새로운 고용을 창출한다고 주장하는데 대해서는 그것은 진정한 노동의 즐거움이 없다는 뜻에서 참된 노동이 아니라고 반박한다.
리프킨은 산업화된 국가가 성공적으로 21세기에 진입하려면 두가지를 유념해야한다고 말한다.
첫째, 기술 진보의 과실이 공정하게 나눠져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생산성 향상에 따라 근로시간을 줄이고 임금은 지속적으로 인상돼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시장 경제에서의 고용감소와 공공 부문의 정부 지출 감소에 맞춰 개인적이고 사회적인 비시장 경제에 보다 많은 관심을 쏟아야 한다. 삶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할 수 있도록 새로운 형태의 사회적 계약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오히려 앙드레 모로아가 명저 「영국사」를 통해 인접국가인 프랑스에서 진행된 유혈혁명에도 불구하고 영국이 혁명과 반동의 유혈충돌사태를 겪지 않았던 이유를 분석한 대목과 유사하다.
『영국의 혁명에 대한 면역성은 무엇보다 개혁을 요구하는 여론이 신문 사법제도 노동조합을 통해 의회에 전달되었고 의회가 개혁을 단행했다는 점이다』
〈조헌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