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너버머(Unabomber)」. 지난 17년간 사제폭탄이 담긴 우편물을 과학기술자들에게 보내 26명의 사상자를 낸 흉악범. 지난해 유력한 용의자로 체포된 테오도르 카진스키는 놀랍게도 미국 명문 하버드대(수학 전공)를 졸업하고 버클리대 종신 교수재직권을 획득한 최고의 인텔리였다.
세계는 이 미국인 중년 남자를 바라보며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그가 과연 고독한 선각자인가, 아니면 영웅주의에 사로잡힌 테러리스트인가를 두고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카진스키는 스스로 산업사회의 비인간성을 고발하는, 인간자유에 대한 철저한 옹호자로 자처한다. 뉴욕타임스지 등에 실린 그의 「유너버머선언―산업사회와 그 미래」는 산업혁명 이후 인간이 자유를 상실하고 과학기술에 지배당하는 노예로 전락했으며 통제할 수 없는 현대과학기술의 발전은 인간성을 파괴하는 핵심요소라고 지적한다. 그리고 적극적이고 결단력있는 소수를 중심으로 혁명을 통해 산업기술 체제를 무너뜨려야 한다고 결론짓는다.
카진스키 그 자신은 이러한 주장을 몸소 실천하려한듯 전기 수도 등 문명의 혜택을 거부한 채 시골의 좁은 움막에서 20여년간을 혼자 살아왔다.
그의 「선언」이 담고 있는 현대과학기술에 대한 비판에 한해서는 많은 지식인들이 상당한 논리와 설득력을 지닌 것으로 평가하는 분위기다.
서울대 김진균교수(사회학)는 「과학과 이성이 인간에 대한 억압기제로 사용돼왔음」을 지적하는 포스트모더니즘 조류와 카진스키의 「선언」이 같은 지점에 서 있을 가능성에 대해 조심스럽게 타진한다.
김교수는 『사물을 바라보는 방식에는 과학적 이성만 있는 것이 아니며 인간적이고 공동체적인 시각이 중시돼야 한다』고 말한다.
문화비평가 김성기씨(현대사상 주간)는 카진스키를 「현대산업사회가 낳은 반이성적(反理性的)이고 반지성적(反知性的) 지식인의 전형」으로 조망한다. 산업사회가 배태한 자기 모순의 화신이며 20세기 후반의 괴짜 지식인이라는 것.
김씨는 합리성을 절대적인 기준으로 삼아온 현대산업사회의 내부적 모순이 한계에까지 다달아 나타나는 자기모순적 현상을 들여다보는 그의 통찰력을 평가한다.
김씨에 따르면 「선언」은 「자동차가 차를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 병원이 사람을 병들게 하며 학교가 사람을 바보로 만드는 현실」을 지적한 프랑스 사회학자 이반 일리치의 지적과 맥이 통한다.
한편 정신병리학적 분석은 카진스키의 폭력성의 배경에 대해 해부한다. 독일에서 심리학과 산업공학을 연구한 김일균박사(문화체육부 청소년육성위원회 전문위원)는 그를 현대사회에서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는 「경계성(境界性)성격」의 소유자로 규정한다.
경계성이란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한 사람이 지닌 정신질환을 뜻한다. 이런 상태의 사람들은 겉으로는 현실에 무관심하며 매우 차갑지만 내적으로는 감정적인 열정이 폭풍처럼 휘몰아치고 있다. 문제는 이런 상반된 감정의 소용돌이가 대부분 자해 고문 살인 등 파괴와 공격적인 행동으로 나타난다. 김박사는 카진스키가 인간성이 파괴되는 현실속에서 끊임없이 자학하다 자신을 좌절케하는 원흉으로 사회를 지목, 이를 향해 공격성을 폭발했다고 해석한다.
유너버머는 「만약 폭력적인 방법을 쓰지 않았다면 선언문이 실리지않았을 것이고 설령 실렸다 해도 많은 독자들의 주목을 받지못했을 것」이라고 폭력을 정당화한다. 그러나 그의 행위가 살상의 형식을 띠는 순간 명분을 상실했다는 게 중론.
이와 관련, 권석만 서울대교수(심리학)는 『유너버머가 폭력적 방법으로 자기주장을 편 데에는 그의 순탄치않은 인생역정과 거기서 비롯된 심리적 억압 등에 큰 원인이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
내성적 성격과 기타 불행한 개인사에서 비롯된 자신의 좌절을 사회변혁이라는 사명감으로 포장했을 가능성도 있다. 자유의 중요성을 그토록 강조한 유너버머가 자신의 생각을 다른 사람들에게 강요함으로써 인생을 선택할 자유를 박탈하는 모순을 범했다는 지적도 있다. 모든 것을 파괴한다고 해서 과연 대안적인 사회관계가 저절로 생겨날 것인가도 냉정하게 짚어볼 문제다.
인간의 자유를 파괴한다는 이유로 카진스키가 그토록 혐오한 컴퓨터. 그 컴퓨터의 첨단문화, 인터넷 공간에 그의 체포이후 팬클럽사이트가 들어서 성황을 이루는 아이러니도 벌어지고 있다.
유너버머의 개인적 특징과 그를 둘러싼 특수한 환경을 감안하더라도 그는 분명 이 시대가 낳은 한 상징이다.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 인간의 행위를 통제」하는 현대산업사회. 개인은 심리적 억압에 대한 분출구를 찾지못한 채 끝없는 좌절감과 이에서 비롯되는 불특정 다수에 대한 증오감에 휩싸여 있다. 뚜렷한 이유도 없이 누군가를 가해함으로써 돌파구를 찾고자하는 심리도 들끓고 있다.
『누군가 나서서 증오에 찬 이들에게 그 좌절이 산업사회와 기계문명의 관계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사실을 납득시킬 수만 있다면 집단적 체제파괴 행위가 현실화될 가능성도 있다』는 김일균박사의 진단은 우리 안에 존재할지도 모르는 또다른 카진스키를 지적하는 것이다.
〈한정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