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론 국내연구현황]中「유교부흥론」비판적 수용모색

  • 입력 1997년 11월 15일 09시 27분


국내의 동아시아론은 그간 지나치게 서구지향적이었던 한계를 극복, 자생적 이론틀을 마련하자는 방향으로 모색되고 있다. 동아시아의 문화적 잠재력을 재해석함으로써 문화적 정체성과 자긍심을 되찾자는 것이다. 그러나 동아시아론에 대한 이러한 자리매김에도 불구하고 서구의 자의적 해석이나 동아시아론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임으로써 또다른 형식의 서구추종주의를 낳고 있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우선 한국 중국 일본 등 세나라를 한자와 유교 영향권이라는 공통점에 터잡아 묶는 것이 문화의 다양성을 무시한 독단이라는 비판이 있다. 이같은 자의적 범주는 유학으로써 동아시아 경제발전을 설명하는 미국 하버드대의 뚜웨이밍(杜維明)을 비롯한 신유가(新儒家)학자들의 구도에서 온 것이다. 뚜웨이밍은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룬 일본 한국 대만 홍콩 싱가포르 등을 유교문화권으로 통칭한다. 유교자본주의로 불리는 그의 이론은 유교의 공동체윤리, 충효사상 등이 자본주의 발전의 사상적 기초가 된다고 보고 있다. 유교가 동아시아 자본주의적 방식으로 서구자본주의에 대항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설명. 그러나 이것은 다른 요소를 고려하지 않고 유교로써만 경제발전을 해석함으로써 문화결정론이라는 비판에 직면하고 있다. 따라서 동아시아적이라는 것은 하나의 허상에 불과하며 동아시아가 아니라 한국적인 것을 추구하지않을 경우 우리 자신도 잃어버리고 서구에 함몰당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는 비판이 있다. 이의 연장선상에서 중국 일본의 지역패권주의에 대한 인식없이 한국의 위상을 과대평가하는 자기환상에 대한 경계도 제기된다. 중국에서 떠오르고 있는 유교부흥론의 근저에는 중화주의라는 문화제국주의가 깔려 있다는 분석. 이는 동아시아의 제도 문화가 모두 중국에서 기원하고 중국을 정점으로 한 체계에 의해 비로소 위치를 부여받고 의미를 지닌다는 주장이다. 역사적으로 한국을 변방국가 정도로 인식해온 중국, 그들이 과연 한국의 유교문화를 동일한 틀에 놓고 동아시아의 부흥을 논하고 있는 것인가에 대해서는 이견이 많다. 국내에서의 유교부흥논의는 이러한 점에 대한 비판적 고찰이 부족하다. 자칫 중국학자들의 유교부흥론의 범주에 한국을 손쉽게 끼워넣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다. 일본 역시 서구지향적인 발전모델을 기반으로 아시아지역 국가들과 상호협력 체제를 구축하는데 적극적이지 않다. 최근 개헌논의는 2차대전 당시 대동아공영권론의 부활을 떠오르게 한다. 결국 21세기 세계제패를 꿈꾸고 있는 중국과 일본의 틈바구니에서 우리에게 적실성이 있는 구체적인 동아시아적 정체성을 밝히고 모색하지 않는 한 중국 일본의 그늘에 가릴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 호소력을 지니는 것이다. 동양적 사상에 대한 무비판적 복권론이 민주주의를 가로막는 장애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유교는 윗사람에 대한 무조건적인 복종을 강조하며 피지배계급을 억압하기 위한 지배이데올로기로 작용해온 측면이 강하다. 학계는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과연 동양적 문화가치가 현실적 힘을 가질 수 있는가를 검증하고 부정적 요소를 과감히 극복하는 여과작업을 벌여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과연 동아시아적이라는 것은 무엇인가」를 차분히 살펴보고 장밋빛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자성이다. 〈한정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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