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단막극 「우리가 서로를 알게 된 순간」

  • 입력 1997년 11월 10일 20시 02분


아름다운 여인과 사랑에 빠졌다. 그 여인이 빨래를 하고 있기에 무엇을 빠느냐고 물었더니 여인이 대답했다. 『당신의 수의(壽衣)를 준비하고 있어요』 사랑은 죽음과 맞닿아 있다는, 하이네의 시에 나오는 얘기다. 오스트리아 극작가 아르투어 슈니츨러(1862∼1931)의 작품 역시 사랑이깊으면죽음밖에방법이없는 탐미적 세계를 다루고 있다. 마로니에소극장에서 공연중인 슈니츨러의 단막극 「우리가 서로를 알게 된 순간」의 주제도 황금빛 에로스와 어두운 죽음의 이중주로 요약된다. 20분짜리 단막극 「1시30분」이 이를 심각하지 않게 말해준다. 정사가 끝나고 새벽 1시30분. 남자는 아침에 출근하기 위해 자기 집으로 돌아가려 하지만 여자는 『날 사랑한다면 더 있어달라』며 붙잡는다. 아침까지 함께 있어준다면 여자는 만족할까. 하루종일 같이 있기를 원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직장은? 사람들의 이목은? 그 사랑이 언젠가는 변하지 않을지? 둘만의 영원한 사랑을 위해서는 가장 사랑이 충만한 지금 이 순간 함께 정사(情死)하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일지도 모른다. 「우리가…」는 아내의 과거를 알고도 10년 동안 침묵하는 남편과 이같은 남편의 이중성에 분노하는 아내의 갈등을 다루고 있다. 아내는 부부를 묶는 끈이 사랑보다 강했다고 믿지만 남편은 아내의 애인이었던 친구에 대한 열등감과 경쟁의식 때문에 더 견디지 못하고 아내를 죽음으로 몰아넣는다. 작가 슈니츨러는 남녀관계, 즉 사랑속에 모든 인간사가 담겨 있다고 확신했다. 의사출신의 그는 사람들의 심층심리를 치밀하게 해부해 사랑이란 외부조건에 의해 언제든 깨지기 쉬운 것이며, 그것을 지키기 위해서는 죽음밖에 길이 없다는 것을 끈질기게 일깨웠다. 19세기말 화려한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왕조의 몰락을 지켜보며 개인적 센티멘털리즘에 빠져들었던 그의 작품세계가 그대로 드러나 있다. 에로티시즘과 광기가 난무하는 20세기말의 서울, 임수택씨가 연출한 슈니츨러의 연극은 1백년전 사랑의 종말이 오늘의 그것과 다르지 않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외화더빙을 듣는 듯한 번역투의 말씨, 오스트리아제국의 화려함과는 거리가 먼 단촐한 무대구성이 아쉽다. 30일까지 공연. 02―744―0686 〈김순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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