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우병환자-인터넷 「기적의 접속」…꺼져가던 생명 살렸다

  • 입력 1997년 11월 5일 20시 14분


인터넷이 20대 혈우병환자의 꺼져가던 생명을 구했다. 혈액응고인자 중 제8인자가 없고 이를 거부하는 항체가 있는 난치성 혈우병 환자 최수복씨(27·가명). 7월말 경희의료원에 입원할 당시만 해도 최씨는 타박상으로 생긴 종양이 커질대로 커져 목숨이 위태로웠다. 담당의료진인 정형외과 유명철(兪明哲)박사팀은 종양제거수술에 마지막 실낱같은 희망을 걸었다. 항체를 가진 혈우병 환자에게 수술은 그 자체로 치명적이어서 보통 생각조차 할 수 없는 모험. 그러나 8월초에 이뤄진 6시간 동안의 대수술은 세계 최초로 성공을 거뒀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수술 부위가 미처 다 아물지 않았다. 치료제를 구하지 못하면 모처럼의 개가도 탄식으로 꺼져버릴 상황이었다. 출혈을 멎게 하려면 국내에 없는 파이바 오토플렉스 노바세븐 등의 주사치료제가 하루에 여섯 병씩 필요했다. 약값은 한 병에 무려 2백30만∼4백만원. 의료진과 환자가족은 막막했다. 힘겹게 마련한 1억여원어치의 치료제도 금세 동나버렸다. 의료진은 8월25일 한국혈우재단의 도움을 받아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외국 제약회사들의 인터넷 사이트에 사연을 띄웠다. 큰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기다림은 절박했다. 기적이 일어났다. 불과 이틀만에 스웨덴 제약회사인 이뮤노사에서 「조건없이 치료제를 보내주겠다」는 회신이 왔다. 이어 덴마크 노보노디스크사와 미국 박스터사도 치료제를 보내왔다. 10월말까지 다섯 차례에 걸쳐 7억여원 어치의 치료제가 도착했다. 『최씨는 아직 병상에 있지만 삶의 의욕과 자신감을 회복하고 있습니다』 담당의사 조윤제(趙允濟)박사는 『의료진에 대한 믿음과 숭고한 인류애가 함께하는 한 최씨는 머지않아 건강을 회복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철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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