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이 오르면 어둠속에서 흐르는 삐삐밴드 출신 이윤정의 테크노음악. 무대에 설치된 컴퓨터가 하나 둘 부팅된다. 여자는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고 남자는 전자오락게임에 몰두한다.》
수십 대의 버려진 컴퓨터사이를 헤집고 다니는 무용수들이 정보화사회에서 철저히 소외된 구시대의 인간상을 보여준다.
백순기무용단의 현대무용 「네티즌」은 컴퓨터가 제공하는 정보의 세계속에서 삶의 존재를 확인하는 현대인의 소외와 단절을 그린 작품.
「가상현실의 사랑」 「전자감옥」 등 네가지 상황이 옴니버스 형식으로 전개된다. 무용수들은 슬라이드로 비춰진 동작들을 그대로 따라 하면서 현대인의 몰개성화와 획일화를 극단적으로 드러낸다. 정지동작과 워킹이 되풀이되거나 로봇춤이나 마임에 가까운, 무용같지 않은 움직임이 자주 등장한다.
「가상현실의 사랑」에서는 요즘 한창 뜨는 영화 「접속」처럼 컴퓨터가 제공하는 익명의 공간에서 만나고 헤어지는 신세대의 사랑을 그린다.
사이버 공간에서 떠도는 사람들은 이름도 얼굴도 목소리도 없다. 인간적인 체취도 느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인이 일상을 탈피해 컴퓨터의 비일상 공간으로 도피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남녀 2인무에서 그 해답을 제시한다.
이에 비해 「전자감옥」이 펼쳐보이는 세상은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년」과 흡사하다.
누군가가 자신의 비밀을 훔쳐보고 행동 하나하나를 낱낱이 감시하는 사회,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자신이 조종되며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의사결정이 진행되는 그런 사회다.
밑에서 위로 비치는 조명이 공포스러운 상황을 극대화하고 크라프트 베르크의 황량한 전자음악과 전자기타가 토해내는 헤비메탈 록이 음산한 분위기를 흠씬 돋운다.
안무자 백순기씨는 『정보의 그물망에 둘러싸인 채 정보지상주의라는 변화한 가치관에 적응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현대인의 모습을 새로운 상상력으로 그려보고 싶었다』며 『수십대의 낡은 컴퓨터를 구하는 일이 제일 힘들었다』고 말했다.
이경은 김소영 김보영 루돌포 파텔라 등 출연. 29일 오후 7시반 연강홀. 02―591―05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