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볼에 키스해주고픈 귀염둥이로만 그를 기억하는가. 러시아의 「천재 피아니스트」 예프게니 키신이 따끈따끈한 새음반을 내놓았다.
베토벤 피아노협주곡 2번과 5번 「황제」. 제임스 레바인 지휘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협연으로 지난 1월 런던에서 녹음됐다.
11세때인 82년의 모스크바 데뷔연주 이후 키신은 피아노계의 요정이 됐다. 나이에 어울리지 않은 강력한 터치, 열정, 순발력, 정교한 해석에서부터 곱슬곱슬한 머리와 인형같은 얼굴까지 모두가 화제의 대상이었다.
수많은 천재들의 몰락을 경험했던 음악계가 그의 승승장구에 염려를 보냈던 것도 사실. 그러나 키신은 유년기에 쏟아진 지나친 관심을 이겨내고 거장의 반열에 진입한 천재로 기록돼가는 듯 하다.
93년 카네기홀 연주, 같은해 내놓은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협주곡3번 음반 등을 통해 그는 오히려 더 완숙해가는 기교와 정열을 입증했다.
최신작인 「황제」협주곡에서 그는 성년에 이른 요정도 청중에게 마법을 걸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1악장 서두에서부터 강력한 힘이 압도감을 준다. 밀어올리듯한 상향음계가 정점을 향할 때마다 탄탄하면서도 뭉그러지지 않는 고른 타건(打鍵)이 속을 후련하게 한다.
그는 힘만을 앞세우지 않는다. 2악장의 잔잔한 명상에서도 그의 마법은 유효하다. 빠르기의 밀고 당김이 적은 가운데서도 단조로움에 빠지지 않는 것은 그의 명료한 음색이 적절한 긴장을 빚어내기 때문이다.
3악장에서는 1악장에서 선보였던 강건함이 춤추는 듯한 리듬감속에 신명나게 재현된다.
〈유윤종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