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시정씨,귀국 작품 모음집 「구름사이에 무지개를」펴내

  • 입력 1997년 10월 16일 07시 43분


27년을 떠돌았다. 한국어를 함께 나눌 수 없고 낙엽이 떨어지면 김장을 해야 한다는 계절감각을 공유할 이웃이 없는 타국에서…. 「나는 누구인가」라는 혼란 속에서도 끝내 추락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내 나라말의 자음과 모음을 놓치지 않아서였다. 푸른눈의 이웃들이 그의 정체성을 인정하지 않으려 할 때 그는 마음속으로 「나는 작가다」를 되뇌었다. 박시정씨(55). 외교관인 미국인남편을 따라 서울땅에 「방문객」으로 돌아온 그가 창작집 「구름 사이에 무지개를」(문학과 지성사)을 묶어냈다. 모국어를 잊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혼자말을 하듯 21년간 띄엄띄엄 발표해온 작품들이다. 소설 속에서 그는 꼭 자신의 모습처럼 타국을 떠도는 한국여인으로 등장하기도 하고 한국땅에서 문화적 소외감을 느끼는 미국인 평화봉사단원으로도 나타난다. 원근법으로 먼 풍경을 보듯 한국인인 자신의 내면을 응시하다가는 고개를 돌려 피부색과 언어가 다른 이방인들의 내면 속에서 나와 닮은꼴의 외로움 슬픔을 읽어내는 것이다. 누구나 존재의 외로움을 견디며 산다는 깨달음 끝에 그가 발견한 구원의 메시지는 「사랑」과 「이해」다. 그가 빚어내는 사랑의 모습은 한 사람에서 다른 사람에게로 전염되며 오래 살아남는 것이다. 소설속의 여인들은 곧잘 이루지 못하고 헤어졌던 사랑의 모습을 오랜 세월이 지난 후 또 다른 사람의 모습에서 발견한다. 「그대의 팔에 새기듯이/죽음만큼 강한 것이 사랑이도다./지옥처럼 냉혹한 것이 헌신, 그 불꽃은 타는 불이다./깊은 물로 사랑의 불을 끄지 못하고 홍수조차 씻어가지 못하네./그대가 사랑을 구하고자/모든 것을 바침으로써/그대가 사방으로부터 조롱받을지라도」(97년작 돌아라 돌아라 오 슐라미테여중 ) 〈정은령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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