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종상-아태영화제,월드컵 열풍에 「빛바랜 잔치」

  • 입력 1997년 10월 13일 08시 04분


『좋지요 뭐. 스크린이 잠시 가려도 월드컵 응원해야지요. 이럴 때 축구영화라도 한편 나왔으면 뜨는 건데…』 최근 「창」을 개봉, 흥행과 축구응원에 두루 바쁜 「왕년의 센터포드」 영화제작자 이태원씨(태흥영화사 대표)의 기대 섞인 푸념. 영화제와 개봉작들이 줄을 잇는 10,11월 영화가는 후끈 달아오른 월드컵축구 열기에 희비가 엇갈리는 표정이다. 지난 4일 시상식을 가진 대종상영화제측은 같은 시간대에 열린 한국―아랍에미리트(UAE) 경기 때문에 빛이 바랬다며 허탈한 표정이었다. 칸이나 베니스영화제처럼 올해 처음으로 휴양지 무주리조트에서 개막, TV 생중계까지 했으나 축구가 시작되자 무대 뒤편 대기실에서조차 채널 돌리기에 바빴다. 코너 진행을 마친 배우들이 허겁지겁 들어와 『몇 대 몇이야』라고 묻는 진풍경이 연출됐을 정도. 9일 시상식이 열렸던 아시아태평양영화제측은 11일 카자흐와의 대전을 아슬아슬하게 비켜가 가슴을 쓸어내리는 모습. 이정성 영화제 사무국장은 『시상일을 놓고 「주말파」와 「주중파」가 맞섰으나 부산영화제 개막(10일)을 빛내주자는 의미로 날짜를 당긴 것이 되레 득이 됐다』고 했다. 18일 우즈베크와의 대전을 2시간반 앞두고 해운대에서 시상식을 여는 부산영화제 주최측은 시상식 후반부에 관객들이 관전을 위해 빠져나가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분위기다. 영화제뿐만 아니다. 서울 종로통의 10층짜리 영화전용관 「시네코아」의 경우 잠실에서 한일전이 열리는 다음달 1일 개관 예정이었으나 1주일 늦추기로 결정했다. 코아아트홀 황인옥이사는 『월드컵경기와 개관일자가 겹치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가 도쿄 한일전을 보고 가슴이 덜컥 내려앉아 1주일 연기했다』고 말한다. 시네코아측은 개관식 때 「붉은 악마 여러분, 프랑스행을 위해 1주일을 기다렸습니다. 이제 영화축제를 벌일 차례입니다」라는 플래카드를 내걸 것을 고려 중이다. 같은 날 개봉하기로 한 영화 「올가미」도 1주 순연(順延)을 할까 말까 고심중. 비슷한 시기에 개봉 예정이던 「모텔 선인장」 「카우치 인 뉴욕」 「차이니즈 박스」 「프리실라」는 오는 25일로, 「편지」는 11월15일로 임금 행차 피하듯 월드컵에 길을 내주고 있다. 11월9일에는 UAE와의 대전이 있기 때문. 코아아트홀 황이사는 『그나마 축구가 영화 비수기인 10,11월에 「열려주는」 게 다행』이라며 『영화인 응원단이라도 만들어야 되겠다』고 말했다. 〈권기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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