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람선대학 세계여행/이집트]피라미드 등반,돈주면 허용

  • 입력 1997년 8월 19일 07시 52분


[문형진씨 참가기] 『고래다』 마이젤교수의 국제법 수업시간. 누군가 바다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일제히 바다에 유유히 떠있는 고래를 황홀하게 바라봤다. 교수님도 한동안 물끄러미 푸른바다를 헤엄치고 있는 고래를 바라봤다. 유람선대학의 가장 큰 즐거움은 이렇게 자연 속에서 공부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공부는 역시 공부였다. 마이젤교수님이 지난 번에 본 시험지를 나눠줬다. C+. 맙소사. 『에이 이게 뭐야』 낙심천만. 동료들은 어떻게 봤을까 궁굼해서 스탠퍼드대의 의예과에 다니고 있는 코리에게 물어봤다. 『B―』라며 양어깨를 으쓱하며 웃는다. 유람선대학에서 외국인이 공부를 잘 한다는 것은 여간 힘들지 않다. 그것은 미국친구들보다 시간을 많이 투자할 수 없다는 데 있었다. 뭍에서는 강의내용을 잘 알아 듣기 어렵기 때문에 미리 예습을 하고 또 강의 중에 잘못 알아들은 부분을 확인하기 위해 밤잠을 안자며 복습을 했다. 그러나 배안에서는 도무지 나만의 예습 복습시간을 갖기 힘들었다. 오늘은 오랜만에 시험이 끝나고 부담도 덜해서 3층의 바(Bar)에 갔다. 이곳 바는 아침이면 강의실, 낮에는 학생회관, 밤에는 술집으로 변하는 곳이다. 대부분 그룹이나 쌍쌍이 모여 조용히 술을 마신다. 물론 더러는 브라질에서 온 레이야니라는 친구처럼 술만 마시며 여기저기 돌아 다니면서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아이도 있다. 값은 캔맥주 하나에 2달러 정도로 뭍에서보다 다소 비쌌다. 앤 브래들리커플과 친해진 것도 바로 그 바에서였다. 둘은 우리 같으면 캠퍼스에서 꼭 붙어 다니는 「캠퍼스 커플」이라고나 할까. 브래들리가 먼저 나와 친해지기 위해서인지 격의 없고 조금은 짓궂은 농담을 던진다. 『너는 미국의 가장 전형적인 세가지 키스가 뭔지 아니?』 나는 곧 그의 뜻을 알아 차리고 빙그레 웃으며 자신있게 대답해준다. 『첫째는 피치 키스(Peach Kiss)―까슬까슬한 복숭아에 입을 대듯 살며시 하는 것. 둘째는 프룬 키스(Prune Kiss)―「프루―운(자두)」이라는 발음을 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입을 쭈욱 내밀어 입술만을 부딪치는 것. 셋째는 알팔파 키스(Alfalfa Kiss)―소가 알팔파 풀을 씹어 먹듯이 남녀가 서로 설왕설래(舌往舌來)하며 격렬하게 하는 것. 일명 프렌치 키스라고도 한다』 앤과 브래들리는 항해가 끝나고 약혼식을 올렸다는 얘기를 들었다. 일부다처제의 나라 이집트. 남자는 신부의 부모에게 과거에는 소를 줬으나 요즘엔 현금을 준다고 했다. 그 액수는 보통 대졸 초임의 40∼60배. 학생들 중의 하나가 우리의 관광버스 기사에게 부인이 몇이나 있느냐고 가이드를 통해 물어봤다. 『세명』이라는 대답에 모두들 『우와』하고 탄성을 질렀다. 가이드의 계속 이어지는 설명이 더 가관이었다. 『이 사람의 월급수준을 감안해보면 이사람은 주제파악을 못해도 한참 못하고 있다』는 것. 피라미드 근처의 호텔로 가는 중에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사라진지 오래인 포니와 브리사 승용차 등을 쉽게 볼 수 있었다. 밤이 되자 몇몇 친구들은 피라미드를 정복해 보겠다고 주위를 서성거렸다. 피라미드에 올라가는 것은 불법. 유람선대의 학장도 옛날 학생중에 한밤에 피라미드를 오르다가 떨어져 죽은 사람이 있다며 등반 금지령을 내린 터였다. 그러나 그런다고 어디 안오를 친구들인가. 그 다음날 아침에 들어보니 피라미드 3개를 오른 친구도 있었고 제일 높은 피라미드를 정복하니 나머지는 시시해서 그만 두었다는 친구도 있었다. 경비원은 어떻게 따돌렸을까. 친구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5달러짜리 하나 집어 주니까 그냥 올라가라고 하던데』 사실 이집트여행 도중 가는 곳마다 그런 식이었다. 바가지를 쓴 친구들도 많았다. 낙타를 타고 피라미드에 올라가다가 낙타주인에게 돈을 다 빼앗겼다고 울상인 친구도 있었다. 이런 친구들을 보고 이집트출신의 한 유람선대교수는 그들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기는커녕 이집트사람들의 편을 들었다. 맙소사. 아무리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해도 그렇지 어떻게 저럴 수가 있을까. 순간 울컥했던 나는 금세 어쩌면 그들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여러나라를 돌아다니다 보니 세상일이라는게 꼭 원칙과 이치대로만 되는게 아니었다. 논리가 아닌 넉넉한 가슴으로 보면 이해 못할 일이 없었다. 역시 세계는 넓고 배울 것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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