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범생이던 서울 K고 1년생 A군(16)은 지난달 중순 부산으로 가출했다가 보름만에 돌아왔다. 돈을 벌기 위해 주유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지만 고생만 될 뿐 생각처럼 돈이 모아지지 않았다.
A군이 집에 돌아와 밝힌 가출이유는 의외로 「당구때문」이었다. 『친구들이 10여만원의 당구빚을 빨리 갚으라고 며칠째 독촉해 견디기 힘들었어요. 또 돈을 벌어 재미있는 당구를 원없이 치고 싶었습니다』
중고생들의 출입이 금지돼온 당구장은 지난 93년 5월 헌법재판소가 「18세 미만 청소년의 당구장 출입금지」를 명문화한 체육시설의 설치이용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이 청소년의 행복추구권에 어긋난다고 위헌판결을 내린 이후 청소년들을 합법적인 「고객」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로 인해 중고생들 사이에 당구붐이 일면서 학생들이 당구비를 마련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는가 하면 일부는 내기당구에 몰두하고 있어 학생 지도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오후 5시경 하교시간이 되면 학교근처 당구장은 교복을 입은 40∼50명의 학생들로 가득찬다. 이 시간 대부분의 당구장은 학생들이 뿜어낸 담배연기로 자욱하고 당구장 주인에게 담배주문은 예사다.
일부 학생들이 밤늦게까지 계속하는 내기당구는 보통 게임당 1만원 정도를 거는 것이 보통. 10분에 1천원 안팎인 당구비도 학생에게는 만만찮은 데다 내기당구 때문에 10만원 이상의 빚을 지고 있는 학생들도 상당수에 이른다.
서울 종로구 청운동의 한 당구장에서 만난 고교2년생 B군(17)은 『당구에 한번 빠지면 공부고 뭐고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며 『어떤 친구들은 당구비를 마련하기 위해 친구들이나 후배 중학생들로부터 돈을 뜯기도 한다』고 털어놨다.
고2년생의 학부모 정모씨(45·여)는 『휴일 전날에는 아들이 밤샘당구를 치고 다음날 아침에 집에 들어오기도 한다』며 『이런 부작용을 고려하지 않고 청소년에게 당구를 허용한 당국이 원망스럽다』고 말했다.
〈윤종구·이명건기자〉